사인(死因)을 두고 국방부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서로 다른 결론을 내렸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 1심 법원이 '타살'이라고 판단했다.
사건 발생 이후 26년간 한 맺힌 세월을 보낸 유족들로선 아들을 잃은 슬픔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은 셈이지만, '누가, 왜' 허 일병을 죽였는지는 여전히 미제로 남아 반쪽짜리 진실을 밝힌 것에 만족해야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부장 김흥준)는 3일 허 일병의 유족들이 "아들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공권력의 횡포로 타살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타살로 인정된다"며 국가가 총 9억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허 일병은 1984년 4월2일 강원 화천군의 최전방 부대에서 좌ㆍ우 가슴과 머리 등 3곳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당시 군 헌병대는 3발 모두 허 일병 스스로 발사한 것으로 결론 내렸고, 2002년 1기 의문사위는 '타살'로, 같은 해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자살'로, 2년 뒤 2기 의문사위는 다시 '타살'로 결론지어 국가기관 사이에 진실공방이 이어졌다.
이날 법원 판결로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두고 벌어졌던 그간의 공방은 어느 정도 일단락됐다. 허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70)씨는 "아들이 절대 자살할 리 없다고 믿고 있었다. 재판부가 타살이라고 밝혀줘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하지만 "누가 왜 죽였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재판부는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망인은 새벽에 머리에 총상을 입어 사망했고, 몇 시간 뒤 망인의 가슴에 2발의 총알이 더 발사됐다"고 판단했다. 즉, 이미 타살된 허 일병을 자살로 은폐하고자 누군가 확인사실까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문사위가 총기 발사자로 지목했던 간부 A씨에 대해선 "기록과 당시 진술을 볼 때 A씨가 발사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에 앞서 "이미 26년이 지나 새롭게 증거를 수집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의문사위와 국방부의 수사자료에서 서로 모순된 진술이 많았다"며 그간의 고충을 토로했다.
재판부는 사망경위에 대해 "당시 중대본부에 있던 누군가가 망인에게 총을 발사했거나, 아니면 중대장 등으로부터 저항할 수 없는 압력을 받은 망인이 총기를 왼손으로 붙잡고 머리에 대고 있던 중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내렸다.
아버지 허씨는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수사기관이 다시 나서서 범인을 잡아줬으면 좋겠지만, 국방부가 진실을 회피하고 있어 어려워 보인다"고 아쉬워했다.
재판부는 또 "사건 당시 헌병대는 가혹행위를 통해 원하는 진술을 얻어 사건을 조작 은폐했고, 부대원들은 망인의 사망흔적을 지우기 위해 물청소까지 했다"며 군 당국의 반인륜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국가의 손해배상 소멸시효 주장에 대해선 "국방부와 1기 의문사위가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는 등, 2004년 2기 의문사위의 결과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손해배상 청구권 행사가 불가능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 뒤 법원 문을 나서던 아버지 허씨는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잘못했다, 죄송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치를 하겠다는 말이면 족할 텐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까?"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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