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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기능이 미래다] 3부 일본 (하) 세대를 넘어 계승되는 히토즈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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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기능이 미래다] 3부 일본 (하) 세대를 넘어 계승되는 히토즈쿠리

입력
2010.02.0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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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카이 세대 복귀시키자" 기술교육의 멘토로 활용

지난해 9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기능 강호'들의 한판 승부가 벌어진 이 대회에 일본도 '모노즈쿠리(제조) 강국'의 자존심을 걸었다. 40개 종목에 대표선수 45명이 출전시켜, 메카트로닉스, 이동식로봇 등 6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금13)과 스위스(금7)에 이어 종합 3위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일본은 2007년, 2008년 대회에선 2년 연속 1위를 거머쥐었다.

지금까지는 '일본=제조강국'이라는 믿음이 통했다. 하지만 도요타의 대량 리콜 사태로 일본의 '모노즈쿠리 강국'으로서의 자존심에도 치명적인 흠집이 가기 시작했다.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모노즈쿠리 정신에 뿌리를 둔 '품질 신화'의 붕괴 징후는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것은 아니다.

최근 몇년새 일본 모노즈쿠리 현장에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떠올랐다. 2007년부터 시작된 단카이세대(2차대전 직후인 1946~49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생산현장에 '세대 단절'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단괴(團塊, 불쑥 튀어나온 돌덩어리)를 의미하는 단카이 세대는 전체 인구의 약 5%를 차지하는 풍부한 노동력과 숙련된 기술을 바탕으로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을 주도해왔다. 이들의 퇴진은 곧 모노즈쿠리 경쟁력의 뿌리인 '기능'의 세대 단절을 의미했다.

일본 기업들도 '모노즈쿠리 기술ㆍ기능의 계승' 문제를 핵심적인 경영과제로 꼽고 있다. 경제산업성이 지난해 일본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앙케이트 조사에선, 응답한 기업들의 53.8%가 기술ㆍ기능이나 노하우를 전달할 수 있는 핵심인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5~10년전과 비교해 직원들의 기술ㆍ기능이 저하됐다고 답한 기업도 13%나 나왔다.

더욱이 일본 젊은이들도 블루칼라 일자리를 '3K'라며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3K는 3D(힘들고, 위험하고, 더럽다)와 동일한 뜻의 일본어 영문표기 머릿글자를 딴 용어다. 기구치 마사코(木口昌子) 후생노동성 기능검정관은 "건설 및 제조업에 취직하는 청년이 감소, 20년 전에는 대졸자 30%가 제조업에 취업했으나 최근에는 15%대로 떨어졌다"며 "청년층이 모노즈쿠리에 흥미를 갖도록 하는 게 일본 노동정책의 주요 테마가 됐다"고 말했다. 단카이세대가 생산현장에서 몸으로 익히고 축적한 모노즈쿠리 지식을 물려받을 젊은이가 줄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는 단카이세대의 제조 기술과 노하우를 고스란히 다음세대로 이전시키기 위해, 제조현장에서 물러난 단카이세대를 다시 복귀시키고 있다. 생산현장에 복귀한 단카이세대가 맡은 임무는 후배 양성. 은퇴기술자 가운데 1급 기능사 자격을 보유한 숙련 기능공을 정부가 '고도 숙련 기능자'로 인증, 직업훈련 및 기술교육의 멘토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작년 9월 현재 5,387명의 고도 숙련 기능자가 등록돼 있는데, 이들은 공업계고등학교, 공공직업훈련기관, 또는 자체적으로 기능공 육성이 어려운 중소기업에 파견돼 후배 모노즈쿠리 인력을 키우고 있다.

기능인을 존경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를 지켜나가는 것도 모노즈쿠리 인재 육성의 핵심 과제이다. 금속가공, 전기, 건축, 의복, 요리, 전통문화 등 모노즈쿠리 각 분야의 기능 1인자들을 가려 '명공(名工)'으로 선정하고 있다.

후생노동성 관계자는 "명공으로 인정받는 것 자체가 큰 명예"라며 "기능자의 기술 수준과 지위를 높이는 것은 물론 젊은 후배들에게 목표를 제시하는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1967년 제정 이래 지난해까지 4,988명의 기능장인들이 '현대의 명공'에 이름을 올렸다. 아울러 기능올림픽대회, 기능그랑프리, 청년모노즈쿠리대회 등 다양한 기능경진 대회도 기능 인재 발굴 및 육성의 핵심 통로로 활용하고 있다.

후지모토 다카히로(藤本隆宏) 도쿄대 교수는 "단카이세대의 경험과 기술ㆍ기능은 역사적 산물인데, 이들의 노하우를 어떻게 다음 세대로 넘겨주느냐가 현재 일본 기업들이 직면한 핵심 과제"라며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도 일본 모노즈쿠리 경쟁력의 핵심인 기술 계승이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틀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문향란기자 iami@hk.co.kr

■ "모노즈쿠리 경쟁력 원천은 사람… 노하우 전수가 생존 방법"

후지모토 다카히로(藤本隆宏) 도쿄대 교수는 "일본의 모노즈쿠리(物作りㆍ제조업)가 강한 것은 산업현장에서 인력이 밑받침됐기 때문"이라며 '히토즈쿠리(인재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도쿄대 모노즈쿠리경영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는 후지모토 교수는 모노즈쿠리 경쟁력의 원천으로 주저 없이 '사람'을 꼽았다.

사람을 일본 모노즈쿠리 경쟁력의 중심축에 두는 것은 뿌리가 깊다. 제조현장에서 일하는 기능 장인을 존경하는 직업관이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은 일본의 특징이다.

후지모토 교수는 "에도시대 이전부터 사무라이들이 기능직으로 옮겨가면서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이 돼 기술과 기능을 익히는 직업문화가 형성돼, 오늘날 산업현장에까지 그대로 이어져왔다"며 "기능인재를 우대하고 존중하는 오랜 사회적 문화가 모노즈쿠리 강국의 힘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개인의 기술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다능공의 팀워크를 통해 세계 최고의 제품 생산을 추구하는 점도 독특하다.

하지만 최근 모노즈쿠리 강국으로서 일본의 입지가 약해지는 현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지모토 교수는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본 기업들이 인건비 등의 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생산체제를 구축하고 ▦단카이세대의 은퇴로 노동인력 구조가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모노즈쿠리 인재가 딛고 서있을 토양이 척박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글로벌 생산 체제의 가속화로 생산현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일본 기업들이 해외 생산기지에 대해서까지는 기능인력 양성 및 관리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며 "팀워크를 중시하는 일본 기업 특유의 현장 분위기도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일본 제조기업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도요타 혼다 히타치 등 자동차나 전기전자 분야의 기업들이 글로벌시장에서 모노즈쿠리정신을 대표해온 배경도 이러한 일본 제조현장의 고유 문화에서 찾았다. 미국은 최고 기술 수준의 부품과 인력을 하나하나씩 모아서 각각의 특성을 살려 하나의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모듈형 생산에서 우위가 있는 반면, 일본은 개개의 부품과 인력은 최고가 아닐지라도 팀워크를 통해 고쳐가면서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나가는 통합형 생산이 강하기 때문에 자동차 등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도요타 등 일본 기업들이 생산현장에서 'I자형'인재(하나의 전문분야만 깊이 파고드는 인재)보다는 본연의 임무도 잘하지만 다른 업무에 대해서도 기본 이상의 지식을 두루 갖추고 있는 'T자형'인재를 선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후지모토 교수는 모노즈쿠리 경쟁력은 기술지식 및 노하우의 차세대 이전을 통해 지속되고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봤다. 이런 맥락에서 단카이세대의 은퇴로 촉발된 세대단절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기능인력들이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몸으로 익힌 모노즈쿠리 지식을 후대로 계승하는 작업이 중요해졌다.

후지모토 교수는 "역사적 산물이기도 한 단카이세대의 기술 및 노하우가 지닌 장점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제조과정뿐 아니라 기획부터 설계, 품질관리, 그리고 제품을 설명하고 판매하기까지의 모든 단계에서, 기능인재들이 축적해온 경험과 지식을 후대로 계속 전달하고 쌓아가는 것이 모노즈쿠리 강국으로서 생존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도쿄=문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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