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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릴라 이윤택의 To be or Not to be] <3> 영화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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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릴라 이윤택의 To be or Not to be] <3> 영화구경

입력
2010.02.02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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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내 딸 또한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한국의 아버지는 사실 자식의 어린 시절에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주로 집 밖으로 떠돌기 때문에 그 실체가 자식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는 것이지요. 더구나 어머니에게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비난을 듣고 성장하는 자식에게 아버지는 그만큼 낯설게 느껴지기 십상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생래적인 떠돌이 장사꾼이어서 더욱 그 실체가 멀게 느껴졌지요. 내가 아버지와 접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달에 한두 번이 고작이었고, 그 시간 또한 대부분 어머니와 다투다가 집을 나가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내가 단둘의 시간을 가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영화 구경, 그건 정말 신나는 나들이였고, 그래서 나는 가슴 설레며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를 기다렸지요. 아버지가 오면 영화 구경을 간다. 이건 어린 내게 동경의 시간이었습니다.

내 유년 시절의 기억 또한 영화구경으로 시작됩니다. 아마 너덧 살쯤 되었을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 등에 업혀서 영화 구경을 갔지요.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서 집에는 아버지와 단둘이 남아 있었고, 아버지와 나는 조금 낯선 표정으로 서로 난처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어색함과 무료함을 견디지 못한 듯, 아버지는 어린 날 달랑 업고 세상 나들이를 나가시는 것입니다.

아랫동네 시장 근처에 초량극장이 있었고, 그 동네극장에서 내 생애 처음 본 영화는 존 웨인 주연의 '서부 삼형제'였지요. 목장을 지키는 삼형제 이야기인데, 그날따라 나는 아버지가 시장 좌판에서 사준 돼지국밥에 체했는지 속이 거북해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이 목장을 비운 사이 악당들이 습격해 들어오고, 막내가 지키는 목장에는 불길한 구름 떼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걱정이 되어서 아예 의자에서 일어섰고, 소들이 엄청난 속도로 나무 울타리를 부수고 달릴 때 나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막내가 소들에 짓밟혀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 구경을 끝내고 극장 문을 나설 때 내 엉덩이는 축축히 젖어 있었습니다. 돼지국밥에 체했는지 영화를 보다가 놀랐는지 나는 똥을 쌌고, 아버지는 신문지로 내 엉덩이를 덮씌우고 업으셨습니다. 춥고 음산한 세상이었습니다.

나는 참을 수 없는 한기에 몸을 떨면서 아버지 등에 바짝 몸을 붙였는데, 내 귓가로 아버지의 느릿한 노랫가락이 흘러 들고 있었습니다. 그건 일본 엔카풍 노래였던가 하이쿠였던가…. 아버지의 등은 따뜻했고 아버지가 부르는 구성진 노래는 감미로웠습니다.

그 뒤 나는 어린 영화광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아버지와 함께 영화관에 가는 습관을 익힙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두 번 집에 들어오시고, 그 짧은 부자 상봉 시간도 대부분 영화관 어두운 객석에 푹 파묻혀 지내기 십상입니다.

영화관 객석이란 것이 참 묘하게도 고독한 공간입니다. 둘이 함께 영화관에 들어와도 일단 영화가 시작되면 혼자가 됩니다. 바로 옆 자리에 같이 있어도 '같이 본다'는 느낌 보다는 '각각 저 혼자 본다'는 느낌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나는 대화라는 걸 나누어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서로 조금 낯설고 부담스러운 존재가 오랜만에 만나 영화관에 가서 어두운 객석에 푹 파묻혀 시간을 보내는 것. 이것이 아버지와 나의 만남의 방식이었지요.

그러나 아버지의 발걸음이 갈수록 뜸해지고, 매년 명절이나 제삿날에만 집에 들르시게 되면서도 나는 그렇게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아버지가 인도해준 영화관에 혼자 가는 습관을 익혔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영화는 재미있는 이유가 있어 좋았고, 지루한 영화는 저래서 지루하구나 깨닫게 해주어서 볼 가치가 있었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영화관은 나의 도서관이자 상상력의 창고가 되었습니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철저하게 스토리를 따라 갑니다. 그러나 그 영화가 내 상상력을 자극할 때는 두 번 세 번 연거푸 보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볼 때는 인상적인 장면을 기다립니다.

이미 스토리는 내게 의미가 없습니다. 장면, 그 인상적인 장면을 포획하기 위해 어둠 속에 도사린 상상력의 사냥꾼이 되는 것이지요. 세 번 째 볼 때는 인물입니다. 내게 관심을 끄는 인물은 주로 조연급입니다.

주연들은 너무 많은 말과 연기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정작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몇 장면 등장하지 않고 대사도 몇 마디 없는 조연의 연기는 짧은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인간의 속내가 짧은 순간 슬쩍 드러나는 것이지요. 그? 저게 인간의 본 모습이야. 저게 진실이라구. 나는 저 혼자 중얼거리며 발견의 기쁨에 몸을 떱니다.

별스런 의미 없이 던져진 영화 속의 대사 한 마디가 내 삶의 규범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재미없는 갱 영화여서 영화 제목도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살인청부업자가 무심하게 던진 말 한 마디는 내 삶의 행동강령이 되었습니다.

"아마추어는 표적이 나타났을 때, 어디서 쏠까? 쏘고 나서 어떻게 도주할 것인가 등등 사소한 것들에 신경을 쓰다가 정작 표적을 놓쳐 버리지. 그러나 프로는 표적이 나타났을 때, 그냥 쏜다. 자신의 감각이 인도하는 대로…."

나는 이 말을 자막으로 읽는 순간, 무릎을 칩니다. 통속적인 갱 영화 속의 대사 한 마디가 성장 통을 앓고 있는 고등학생의 막연한 우울과 망설임을 한방에 날려 버립니다. 이때부터 나는 영화 속의 말에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영화관에 갈 때 작은 수첩과 볼펜을 지참하는 습관이 첨가됩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그냥 미친 듯이 갈겨 댑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삐뚤한 글씨가 몇 페이지 가득 담겨 있습니다. 나는 그 영화 속의 말들 속에서 삶을 이해하고 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영화관은 젊은 시절 내 상상과 사유의 보물창고가 되어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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