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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일꾼' 외국인 이웃사촌] (3) 퇴역 미군들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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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일꾼' 외국인 이웃사촌] (3) 퇴역 미군들의 모임

입력
2010.02.02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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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해외참전재향군인회 대구지구 "봉사·소통·우의 넘어 뿌리내렸죠"

1일 오후 7시께 대구 남구 봉덕동 미군 기지 캠프워커 정문 바깥으로 100m 떨어진 미국해외참전재향군인회(Veterans of Foreign Wars) 대구지구 사무실. 지하 1층 70㎡ 남짓한 이곳에서는 건장한 체격의 백인과 흑인 10여명이 재즈와 팝송을 들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맥주와 음료수도 마시고 당구도 칠 수 있는 사무실의 한쪽 벽면에는 성조기와 군인 사진, 상패, 트로피 등이 가득하다.

대구권 미 퇴역 군인들의 아지트인 이곳에서는 VFW 대구지구 사령관 대린 콤즈(42), 전임 사령관 켄 스위어주스키(59), 차기 사령관 랠프 코너(47)씨가 한미 친선 모터사이클 경기 대회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퇴역 군인 모임이라서 그런지 민간인인데도 호칭은 '사령관(Commander)'이었다. "작년에 대회가 끝나고 한국인 참가자들과 햄버거도 먹으며 뒷풀이할 때가 좋았다"는 콤즈씨의 말에 코너씨가 "앞으로 매년 가을마다 대회를 열자"고 맞장구를 쳤다.

이처럼 VFW 대구지구는 대구와 경북 칠곡군 왜관읍 등 대구권에 사는 700여 퇴역 미군 등의 구심점일 뿐 아니라 한국과 소통하는 장이 되고 있다. 특히 회원 중 200여명은 한국인 여성과 결혼, 소통의 차원을 넘어 지역에 강한 뿌리를 내렸다.

모터사이클 경기 대회는 지난해 10월 초 VFW 주최로 대구에서 처음 열렸다. 경찰이 에스코트를 한 가운데 도심의 센트로팰리스에서 출발, 대구스타디움과 팔공산을 거쳐 영천댐까지 3시간여 만에 돌아오는 코스였다. 대회에는 한국과 미국의 라이더 35명이 참가, 가을 정취를 맘껏 즐겼다. 콤즈씨는 "한국 사람과 미국인이 반반 정도 참석했는데 주행을 끝내고 돌아올 때는 모두가 친구가 됐다"고 자랑을 늘어 놓았다.

1992년 강원 원주시에서 한국인 부인(45)을 만나 결혼한 코너씨는 매월 셋째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찾는 곳이 있다. 대구 동구의 한 고아원이다. 지난달 16일에도 미국인교회 신자 15명과 함께 이곳을 찾아 1월 중 생일을 맞은 꼬마들에게 생일 잔치를 열어 주고, 점심으로 햄버거와 핫도그를 만들어 줬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도 50명 남짓한 원생들과 '징글벨' '루돌프 사슴코' 등 캐럴을 같이 부르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2002년부터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다.

코너씨는 주말마다 처가인 원주시를 가곤 했는데 장모가 차려 주는 닭도리탕 삼겹살 불고기가 무척 좋았다. 비록 영어는 못하지만 사위 사랑하는 장모의 마음이 식탁 위에 가득 올랐다. 등산을 좋아하는 처이모를 따라서 지리산 오대산 설악산 등 이름난 산은 다 다녀 봤다. 3년 전부터는 당뇨병이 심해진 장모와 장인을 대구 집에 모셔 같이 살고 있다. 그는 "한국을 알기 위해 2년 반 동안 별도로 한국말을 공부했다"며 "혹시나 한국 사람이 못 알아들을까 봐 사투리는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회원 칼 턴보우(49)씨도 매월 한 차례 한국인 부인과 함께 대구 달서구의 한 정신병원을 찾아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옷과 이불 빨래는 물론이고 청소에 요리까지 필요한 일이면 닥치는 대로 한다. 스위어주스키씨는 "턴보우가 몇 년 째 개인적으로 정신병원 도우미를 하는 것을 보고 VFW도 돈을 조금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퇴역 군인이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할 경우 배우자를 돕는 것도 이 단체의 몫이다. 지난해 VFW 소속이던 존 캄튼(52)씨가 숨졌을 때다. 한국인 부인과 딸은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미국 대신 대구에 계속 살기를 희망했으나 생계가 막막했다. 부인의 노후를 위해 병원에 일자리를 얻어 주고 사회보장과 연금 혜택도 받을 수 있게 해 줬다.

스위어주스키씨의 대구 사랑도 유별나다. 80년 당시 대구에서 일하던 구미 아가씨(56)와 결혼, 30년간 같이 살고 있는 그는 딸(28)의 대구 사투리가 마냥 듣기 좋다. 그는 "스물여섯 살 때 한국 땅을 처음 밟은 후 아내를 만난 곳이 대구니 이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며 "더구나 한국은 치안이 잘 돼 있어 자녀를 키우는 데도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99년 9월 결성된 VFW 대구지구는 당초 한국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등 전투가 발생한 지역에 근무한 현ㆍ퇴역 군인과 군무원의 복지를 위해 탄생했다. 이 단체는 대구아메리칸스쿨에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글짓기와 웅변 대회를 열고 미군 부대에서 우수 소방관과 인명구조원 등을 선발, 한국과 태평양 대회를 거쳐 세계 대회에 내보낸다.

VFW는 국내에서 서울과 경기 동두천ㆍ의정부ㆍ평택ㆍ성남ㆍ오산시 등 7개 권역에 결성돼 있으며 대구의 콤즈씨가 한국 7개 지구를 대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소령으로 제대한 콤즈씨는 VFW 한국 대표로 한국인 참전 용사, 주한미국대사 등을 만나면서 교류 사업과 퇴역 군인 복지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

콤즈씨는 "대구에 사는 미군과 미국인들은 모두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제 몫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며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대구 사람에게는 배울 것이 많다"고 말했다.

■ 지역사회 가교역할 '한국부인회'

"대구 시민들은 국제결혼자를 소중히 품어 줘요." "언제 떠날지 모르지만 고국에 살고 있으니 좋은 일도 해야죠."

미군 및 군속과 결혼해 대구권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부인의 모임 한국부인회의 회장 김해연(48)씨가 1일 저녁 대구 남구 VFW 사무실에서 회원 엄옥경(47) 김계숙(40) 김은영(39)씨를 만나 오랜만에 국제결혼자의 속내를 털어놨다.

"2006년 모임을 처음 만들 때는 정말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어요. 소수의 설움을 아시잖아요. 설 명절 때 대구의 미군 기지 사령관을 찾아가 떡국도 차려 주고 제기차기도 가르쳐 주며 국제결혼자 모임의 시작을 알렸죠."

초창기 10여명에 불과했던 이 모임 회원은 현재 50여명이다. 아직도 많은 한국인 부인이 모임에 가입하지 않았고 서울이나 외국으로 떠난 회원도 있지만 모임은 탄탄하다.

좋은 일 하겠다는 그들의 말마따나 지난해 12월에는 대구 남구의 장애인 가정에 연탄을 배달했고 미군 부대가 있는 남구와 손잡고 소년ㆍ소녀 가장을 집으로 불러 따뜻한 밥을 차려 주기도 했다. 또 미군 장교와 교사 자격증이 있는 미국인 여성을 지역사회의 무료 영어 강사로 초빙하는 등 한국과 미국의 가교 역할을 하며 좋은 이웃으로 각인되려 애쓰고 있다.

친정이 타지인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국제결혼자에 대한 시각이 대구가 더 따뜻하다고 말한다. 김계숙씨는 "대구 사람들은 비록 보수적이지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도 꼭 인사할 정도로 호의적이에요. 사람들이 감정 표현을 잘하지 않아 어떤 때는 화를 내는 것으로 오해한 적도 있지만 말문이 트이니 당장 언니 동생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왜관읍에 사는 김은영씨도 "지난해 11월 아파트 옆집에서 김장 김치를 가져다 줘 너무 뜻밖이었어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여성차별도 심하고 음식도 입에 잘 맞지 않는다. "여성이 차를 몰다 접촉 사고가 나면 '집에서 밥이나 하지'라는 것이 대구 남자"라며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을 느낀 우리가 고국에서는 성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합니다"고 미간을 찌푸렸다.

또 고국이니만큼 복지관 등에서 하는 주민생활강좌 등 각종 동호인 모임에 참여하고 싶지만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쉽게 어울리지도 못한다. 여기다 국적이 미국이다 보니 아플 때 병원을 이용해도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미국인 남편들은 대체로 부인들에게 잘한단다. 한국에서 살고 한국 문화를 접하면서 처가 나라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다. 미군 부대 복지센터에서 부인 상담을 하고 있는 김해연씨는 "과거와는 달리 국제결혼한 한국인 부인들이 다들 대접받고 산다"며 "가끔 가정 불화를 상담하는 한국인 부인이 있지만 대부분 개인적 문제"라고 말했다.

그들이 대구와 한국 사회에 바라는 것도 다른 외국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로 조금씩 다르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안아 주세요."

대구=글·사진 전준호 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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