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를 개설한 지점에서만 펀드 계좌확인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며칠 전 펀드 판매사를 옮기기 위해 찾았던 A은행 지점에서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펀드이동 절차를 소개하는 어떤 자료나, 정부 발표에도 개설지점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는 없었던 터였다.
황당해서 은행 본점에 전화를 걸었더니, 더 황당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모든 지점에서 계좌확인서를 발급하도록 했더니 펀드가 흔적도 없이 나가버려서요. 그래서 개설한 지점에서만 발급할 수 있도록 전산망을 막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은행 측은 펀드 관리를 위한 전산미비로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니, 필요하면 개설 지점을 통해 팩스로 계좌확인서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사정은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였다. B은행의 경우, 본점과 지점 간에 관련 전산망이 갖춰져 있지 않아 계좌확인서는 오로지 본점에서만 발급 가능한 상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금융전산망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계좌확인서를 팩스로 받고 본점까지 가야 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정말로 전산미비 때문인지, 혹시 절차를 최대한 번거럽고 복잡하게 함으로써 펀드이동을 막아보려는 고도의 전략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펀드판매사 이동제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제도가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6월부터 펀드 이동제 도입을 추진해왔고, 이미 석 달 전 펀드를 판매하는 금융기관에 전산실무지침서까지 배포했다. 그러고도 이제 와서 '전산미비'운운한다면 누가 보더라도 그 의도를 의심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펀드판매사 이동을 위한 제도의 문은 이미 열렸다. 물론 금융기관들은 자기 펀드고객이 다른 금융사로 가는 게 당연히 싫을 것이다. 하지만 고객을 붙잡으려면 최고의 서비스로 마음을 사로잡아야지, '꼼수'를 써서 발목을 잡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남보라 경제부 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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