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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호암의 무한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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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호암의 무한탐구

입력
2010.02.02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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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12대, 300년 동안 만석꾼의 부를 유지하며 한국적 '노블레스 오블리주'전통을 세워온 경주 최씨 가문의 얘기를 다룬 KBS 1TV의 주말 드라마 <명가(名家)> 가 화제다. 특히 드라마 첫 회에서 엽전 형상을 통해 돈과 부에 대한 철학을 편 것은 인상적이다. 둥근 모양은 하늘이고 가운데 뚫린 네모는 땅을 뜻하는 것이어서 엽전은 그 자체로 하늘과 땅의 이치, 곧 순리를 나타낸다, 사람이 이 순리를 거슬러서는 안되듯이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얻거나 풀 수 없는 것 또한 하늘과 땅의 순리라는 것이다.

▦ 올해로 발간 10년을 맞는 최인호의 소설 <상도> 는 작가적 상상력이 만든,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이 죽기 직전 남긴 '재상평여수(財上平如水) 인중직사형(人中直似衡)'을 화두로 전개된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곧기가 저울과 같아야 한다는 뜻의 이 말은 "장사란 이익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며,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는 최고의 이윤"이라는 메시지로 연결된다. 경주 최씨 집안의 융성 비밀이 돈보다 사람을 중시하며 올곧은 후손을 키운 것이라면, 임상옥의 장사 비결 역시 재물을 흐르는 물처럼 여기며 사람과 신의를 천금같이 여긴 것이다.

▦ 12일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호암(湖巖) 이병철(李秉喆ㆍ1910~1987) 삼성 창업주의 업적과 뜻을 기리는 행사가 기념책자 '담담여수(淡淡如水)' 발간을 시작으로 이번 주부터 다채롭게 펼쳐진다. 그러나 '세기적 기업인'으로 불리는 고인의 족적이 워낙 크고 긍ㆍ부정의 공과가 함께 하는 까닭에 하나의 틀로 그를 잡아내기 쉽지 않다. 다만 호암이 세상을 뜨기 전 자신의 묘비에 '자기보다 현명한 인재를 모으고자 노력했던 사나이가 여기에 잠들다'라고 기록되기를 원했던 것에서 보듯, '사업=사람경영'을 빼놓고는 호암을 제대로 평할 수 없다.

▦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평가도 다르지 않다. "호암은 사업이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삼성사관학교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인재에 대한 호암의 열정은 기업사에 남을 문화를 일궈냈다." 호암이 마지막 열정을 불태워 기흥에 삼성종합기술원을 설립하고 2층 벽면에 직접 쓴 휘호'무한탐구(無限探究)'를 내건 것도 그의 정신세계를 잘 대변한다.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고 그 기술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호암의 철학은 혁신과 창의가 시대정신인 지금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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