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가 2일 세종시 문제를 놓고 또다시 정면 충돌했다. 지난달 11일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두 사람이 설전을 벌인 것은 벌써 세 번째다.
박 전 대표는 2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기 직전 기자들을 만나 "너무 기가 막히고 엉뚱한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이라면서 정 대표의 전날 발언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정 대표는 1일 당내 세종시 토론회에서 "박 전 대표는 원안이 좋고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일 것"이라며 박 전 대표를 겨냥했다.
이어 정 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세종시는 과거에 대한 약속이냐, 미래에 대한 책임이냐의 문제"라며 "약속 준수는 그것 자체로 선하지만, 선한 의도가 언제나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고 역설했다.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는 박 전 대표의 '약속론'을 비판하면서 '박 전 대표=과거, 정 대표=미래'라는 이미지를 심으려 한 것 같다. 정 대표는 이어 "정치인들은 늘 나라를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의욕과 야심 때문에 국가 대사를 자기 본위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며 "정치인이 정말 나라를 위해 일한다면 자신을 희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본회의장을 나오며 "세종시법은 국가균형 발전과 수도권 과밀 해소를 위해 도움이 되고 또 잘 될 수 있는데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세종시 문제의 본질"이라고 응수했다.
두 사람의 신경전은 지난 달 '미생지신(尾生之信) 해석 공방' 으로 시작됐다. 정 대표가 "미생은 애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많이 오는데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 익사했다"고 말하자, 박 전 대표는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됐고 애인은 평생 괴로움 속에 손가락질 받았을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두 사람은 세종시 당론 수렴 방안을 놓고도 또 한번 논전을 벌였다.
두 사람의 충돌은 일단 세종시 수정안 찬반 논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차기 대선주자들간의 경쟁이란 측면이 개입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 대표는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시키는 데 앞장서 여권 주류의 대표주자 입지를 다지려는 계산을 하는 것 같다.
정 대표가 최근 스위스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세종시 문제에 대해 교감한 뒤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박 전 대표도 이에 밀리지 않겠다고 판단한 듯 세종시 수정안에 제동을 걸기 위해 '침묵의 정치'에서 벗어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으로 세종시 당론 변경 절차에 들어가면 두 사람의 갈등은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한나라당에서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두 사람이 싸우는 게 걱정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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