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석조전(사적 제124호)은 유린당한 강토 위에 근대 제국을 세우려 했던 고종(1852~1919)의 꿈이 담긴 건물이다. 그 석조전이 고종이 머물던 때의 모습대로 복원된다.
지난해 10월 덕수궁 원형 복원 공사를 시작한 문화재청은 2일 공사 현장을 공개하고 향후 복원 계획을 설명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석조전은 을미사변(1895)의 아픔을 딛고 국권을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고종의 혼이 서린 곳"이라며 "이곳을 복원해 대한제국의 역사를 알리는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철제 파이프로 엮은 비계를 넘어 석조전 내부로 들어가자 100년 전 쌓아 올린 담홍색 적벽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1900년 착공해 1909년 준공될 때까지 대한제국에서 생산된 벽돌이다. 잘려나간 단면에는 여전히 윤기가 돌았는데 요즘 대량 생산되는 벽돌보다 훨씬 차져 보였다. 그러나 회다짐 자국은 궁궐 건축물 치고는 다소 거칠어 보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933년과 1938년,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석조전의 용도가 바뀌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개축한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미술관으로 쓰느라 후대에 덧바른 벽토를 뜯어낸 2층과 3층 벽에는 여러 흔적이 남아 있었다. 복원공사를 담당한 아름터건축사무소 김석순 소장은 "연도(煙道)를 비롯해 반자(천장을 편평하게 만들기 위해 설치하는 넓은 판 형태의 구조물)를 끼운 홈 등이 발견됐는데, 이를 토대로 준공 당시의 난방시설과 내부 장식 등의 원형을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1918년 촬영된 내부 사진과 현장의 흔적을 종합해 굴뚝과 욕실 등을 당시 모습대로 복원할 계획이다.
눈에 띄는 것은 반자를 뜯어낸 보꾹(천정의 안쪽 면)의 형태. 철제로 만들어진 폭 50~60㎝의 길쭉하고 얕은 아치가 석조전 전체의 천정을 받치고 있었다. 김 소장은 "설계를 맡았던 영국인 건축가 하딩의 구상인 듯한데, 자세한 설계 의도는 더 연구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창덕궁 희정당과 고궁박물관 등에 남아 있는 같은 시대의 궁궐 유물을 참조해 2012년까지 내부 인테리어를 포함한 석조전의 복원 작업을 끝낼 계획이다.
▦석조전
서양의 근대 국가를 모델로 강력한 대한제국을 세우려 했던 고종의 의지로 건축됐다. 대한제국 선포(1897) 직후 영국인 건축가 하딩이 설계를 시작, 1900년에 착공해 1910년에 완공된 3층 건물이다. 생활 공간과 정무 공간을 따로 둔 조선 궁궐 건축의 법식에서 탈피해 황제 및 황후의 침실, 업무 공간인 편전과 시종들의 거처까지 한 건물 안에 있는 것이 특징. 완공되던 해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황궁의 전각 역할은 채 몇 달을 가지 못했다.
일제는 고종이 서거한 뒤 1933년부터 석조전을 '이왕가 미술관' '근대 일본미술 진열관' 등의 용도로 사용했다. 해방 직후인 1945년에는 미ㆍ소공동위원회와 UN한국위원회 사무실이 설치되기도 했다. 1955년 국립중앙박물관, 1973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했으며 1987년부터 2005년까지는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됐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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