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후 경기 시흥시 글로비스 자동차 경매장. 경매장 앞쪽 벽에 걸린 대형 전광판에 경매번호 1081번 2006년형 ‘로체’의 사진과 평가점수가 떴다. ‘1점’. 경매에 앞서 차량 전문가들이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매긴 점수였다. 여러 번 사고를 당한 흔적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경매가 시작되자 경매 참가자들의 손이 책상 아래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붉은 버튼을 한번 누를 때마다 경매가가 3만원씩 올라갔다. 경매가는 650만원에서 시작해 숨가쁘게 올랐다. ‘경쟁’이라는 붉은 글씨도 깜박였다. ‘낙찰’. 낙찰가는 923만원이었다. 중동지역에 자동차를 수출하는 업체의 딜러가 차의 주인이 됐다.
곽용호 글로비스 중고차사업팀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사고 흔적이 있으면 가치가 크게 떨어지지만 외국에서는 차량 뼈대에 변형만 없으면 사고가 없었던 차와 동등하게 평가 받는다”며 “특히 요르단, 리비아 등 중동지역에서 우리나라 중고차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고 말했다. 이날 중고차는 538대가 출품됐고 321대가 낙찰돼 새 주인을 찾았다.
해외에서 우리나라 중고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국내 중고차 경매시장의 열기도 뜨겁다. 국내 중고차 경매시장의 60%를 차지하는 글로비스 경매장에는 2009년 한 해에만 총 6만1,174대의 중고차가 출품돼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27%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중 61%가 낙찰됐고 낙찰된 차 중 1만3,815대가 지난해 해외로 수출됐다.
경매가 시작되기 전인 이날 오전 경매장 밖 주차장. 경매에 출품될 538대의 자동차가 주차장에 일렬로 늘어섰다. 현대차의 쏘나타부터 스타렉스까지, 기아차와 대우차, 외제차까지 각양각색의 차가 새 주인을 기다렸다. 유종수 글로비스 시흥경매장 소장은 “글로비스 경매장에만 매주 1,000~1,200대의 중고차가 출품된다”며 “특히 시흥경매장은 인천항이 가까이 있어 대부분의 물량이 수출된다”고 말했다.
이날 경매에 참여한 업체의 딜러들은 경매가 시작되기 전 주차장을 돌아다니며 자동차를 둘러보고 시동도 걸어보며 꼼꼼히 상태를 살폈다. 오전에 차량의 상태를 점검하고 오후에 경매장에서 경매가 진행되는 구조였다. 외국인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주로 한국에 들어와 2~3개월씩 머물며 자동차 경매에 참여하고 자신의 나라로 수출까지 마치면 돌아갔다가 몇 개월이 지나면 다시 돌아와 중고차를 사간다고 했다. 경매차량을 꼼꼼히 살펴보던 한 외국인은 “중동지역에서 한국의 중고차 수요가 많은데 특히 아반떼XD는 요르단에서 보지도 않고 사갈 정도이고 포터는 이라크에서, 스타렉스는 시리아에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특히 중고차 경매장이 최근 각광을 받는 이유는 투명한 거래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중고차 시장에 대거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중고차 시장은 세금을 낮추기 위해 다운계약서를 작성하는 등의 방법을 많이 썼다. 하지만 외국 업체들이 중고차 구매에 나서면서 보다 투명하게 거래가 이뤄지는 경매장이 활성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중고차 수출 업체 ‘아랍글로벌’을 운영하고 있는 요르단인 라샤드아바시(30)씨는 “경매장은 시중 중고차 시장에 비해 세금계산서 등 서류 처리가 깔끔하고 거래가 투명해 외국인들이 선호한다”며 “외국에서 바이어가 한국에 오면 80%는 경매장부터 데려가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매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노후차 세제지원에 따른 중고차 물량 증가와 함께 경매장이 중고차 시장에서 새로운 유통 경로로 자리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등록된 중고차는 202만3,450대로 전년 대비 12.6% 증가했다. 이들 중고차가 경매장을 이용하면 팔고자 하는 사람은 가장 높은 가격에 팔 수 있고, 매매업체는 원하는 차량을 적시에 구입할 수 있어 서로에게 장점이라는 것이다. 곽 팀장은 “중고차가 외국에 수출돼 팔리는 경우 우리나라 신차 출고가보다 더 높게 팔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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