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기농사꾼 아버지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마다했다. 1972년부터 줄곧 자연의 힘을 믿자는 주의였다. 하지만 세상은 믿어주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번지레한 때깔과 가격만 따졌고, 농사꾼으로서의 가치 역시 오직 생산량으로 저울질됐다.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 대학 나와 도시에 살던 아들이 1992년 합류했다. 그는 아버지를 믿었다. 부자(父子)는 좋은 흙과 기술을 찾아 전국을 누볐다. 마침내 세상이 ‘친환경’ ‘유기농’의 값어치를 깨닫게 되면서 이들의 딸기는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제는 미리 주문하고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명품 대접을 받는다.
곽해석(71)ㆍ무현(46)씨 부자의 딸기는 일반 딸기(㎏당 약 6,500원)의 세 배 남짓(㎏당 약 2만원) 비싸다. “전량 사전주문으로 팔고, 그나마도 늘 물량이 달립니다.”
친환경농산물인증제가 도입된 2001년 최고등급인 ‘유기농산물인증’을 받았고, 유기농전문업체(올가)가 판로 개척을 자임했다. 이들 부자의 연 매출은 3억원, 순이익만 1억원이다. 지난 달 말 경북 고령군 쌍림면 곽씨 부자의 비닐하우스에는 그 귀한 딸기들이 주렁주렁 자랑처럼 열려 있었다.
“우리 딸기밭은 다른 데보다 한 뼘 정도 이랑이 깁니다. 뿌리끼리 엉켜 싸우지 말고, 영양분을 마음껏 마시라는 배려죠. 당연히 맛도 달고 향도 진해질 밖에요.”
그래도 가장 큰 비결은 흙이라고 했다. 부자는 전국 땅을 뒤져 강원 평창군의 흙을 선택했고, 4년 넘게 인산 함량(산성도)와 염도를 떨어뜨렸다. 화학비료에 찌들어 늙어버린 땅을 회춘시킨 것이다. 힘을 회복한 흙은 잡초나 벌레에게도 좋은 서식 환경이다. 그것들과 싸우기 위해서라도 부자의 몸이 더 부지런해져야 했다. “돼지 뼈를 현미식초에 녹인 물과 굴 껍질을 빻아 섞어 칼슘을 공급했고, 소나무 톱밥과 베어낸 갈대도 뿌렸어요. 벌레는 손으로도 잡고 천적도 이용했죠. 담뱃잎 태운 연기를 쓰기도 합니다.”비닐하우스 온도나 습도, 조도를 조절하는 다양한 방식 등 그들이 고안한 기술도 적지 않다. 아들 무현씨는 “정성을 들이다 보면 아이디어가 떠올라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자는 자신들의 성공 비결 또한 땅에 대한 흔들리지 않은 믿음이라고 자부했다. 거기에 두 부자의 맹렬한 노력이 뒤따랐을 것이다. 딸기가 상한가를 치자 주변에서는 농사를 더 지으라고 종용하지만 곽씨 부자는 요지부동 예나 지금이나 딱 10동(3,000평)만 고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땅이 허락하고 몸이 허락하는 한도를 겸손한 신앙인처럼 지키겠다는 신념이다.
요즘 부자에게는 돈 버는 재미보다 더 기쁜 일이 있다고 했다. “손자(17) 녀석도 딸기농사를 잇고 싶다고 합니다. 딸기 3대 멋있지 않습니까?”아버지의 손자 자랑에 멋쩍어진 아들이 빙긋이 웃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고령=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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