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 가족들 함께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인도양의 휴양지 몰디브를 찾은 직장인 김모씨.
몰디브가 자랑하는 해저레스토랑에 들려 바닷속 열대어와 산호초를 바라보며 이색 식사를 즐겼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 그는 카운터에 '생소한 신용카드'한 장을 내밀었다.
이 카드는 비자(VISA)와 마스터(Master)카드 표시가 전혀 없는 비씨(BC)카드 로고만 찍힌 국내 전용카드. 현지 카운터 직원도 그 동안 본적이 없는 신용카드를 받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식사대금 299달러를 결제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김씨는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에서도 우리나라 카드를 쓸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국내 신용카드가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비자나 마스터 등 해외 유명카드사의 로고가 찍히지 않고는 외국에서 무용지물이던 국내 신용카드가 이제 '내수용' 딱지를 떼고,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진짜 카드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비자와 마스터로부터의 독립'은 국내 신용카드업계의 오랜 숙제였다. 국내 카드사들이 제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갖춘 카드를 내놓아도 비자와 마스터와 계약 관계를 맺지 않으면 해외에서는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자사 브랜드만 찍힌 국내 전용카드와 비자와 마스터 카드 로고 함께 넣은 해외겸용카드를 따로 제작해 보급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신한카드와 비씨카드가 다른 해외 네트워크사들과 제휴를 통해 국내용 카드로도 해외결제를 가능토록 했기 때문이다.
올 초 신한카드는 일본의 JCB와 함께 독자브랜드 카드인 '유어스(URS)' 카드를 출시했고, 비씨카드도 미국의 글로벌 신용카드사인 'DFS'와 제휴를 맺어 올 10월에 자체 브랜드 카드를 내놓을 예정이다.
형식상 글로벌 업체와 손을 잡는다는 면에서는 종래의 비자ㆍ마스터 제휴와 비슷하지만, 내용은 확연히 다르다. 다른 글로벌 업체의 로고가 없는데다, 국내용 카드이면서도 해외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용자들은 국내용 카드 연회비만 내고, 해외에서 쓴 사용액의 1.0%를 수수료로 내지 않아도 된다. 카드업체도 국내 매출액에 대해서는 따로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
비자와 마스터카드와 제휴한 해외겸용카드의 경우 사용자가 국내에서 쓴 금액에 대해서도 0.04%를 수수료 명목을 내야 했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국내 카드업계가 비자와 마스터카드에 수수료만 내지 않아도 향후 10년간 약 3조원의 비용절감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카드사들이 진정한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신한카드와 비씨카드가 이번 제휴로 해외사업 진출에 물꼬를 트기는 했지만, 해외에서 자체 가맹점을 갖고 사업을 하는 국내 카드사는 아직 전무하다.
해외에도 자체 결제시스템을 구축하고 가맹점을 확보하면 고객들은 더 낮은 수수료로 카드를 쓸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시스템구축에 워낙 엄청난 초기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당장 나서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외진출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국내 카드사들로선 이미 과포화된 국내시장에선 성장의 한계를 느끼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 신흥시장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우재 단국대 신용카드학과 교수는 "국내 신용카드업은 서비스 산업측면에서 봤을 때 이미 상당한 경쟁력을 갖췄다"며 "다만 단독으로 해외로 나가기 보다 은행과 유통, 자동차, 정보통신회사 등 카드사들의 계열사과 동반 진출하는 전략을 활용한다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 전문가 한마디/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신용카드사들의 해외진출은 초기 투자비용이 엄청난 만큼 단계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가는 주요 여행지나 비즈니스 거점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결제시스템을 보급하고, 가맹점을 확보해야 한다.
신용카드 소비의 주체인 내국인이 많이 찾는 곳을 따라 사업을 진행하고 확장시켜야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고, 초기 사업정착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나 중국 같은 지리적ㆍ문화적으로 가까운 곳을 공략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르기는 하지만 이들의 신용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해외진출의 성패를 가름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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