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심의가 열기를 띠다 보면 감정적 말 싸움, 그것도 쟁점과 무관한 설전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민주화 20여 년이 흘렀어도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자리잡은 대결과 항쟁의 여야 구도가 그대로인 한국 국회만 그런 게 아니다. 민주주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이후 심심찮게 선진적 모습과는 거리가 먼 후진형 의회의 광경을 연출해 화제가 됐다. 유난히 격식을 중시하는 일본에서도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의원과 각료의 품격을 의심스럽게 하는 국회 풍경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 언론이 전하는 속된 언행의 양태도 눈과 귀에 익다.
■ 야당 의원들의 야유에 견디다 못한 다혈질 장관이 "시끄러워!" 하고 호통을 친다. 벌집을 쑤신 듯한 소동이 일고, 정부측 반성과 사과가 회의 속개의 전제조건이 된다. 총리가 장관에게 주의를 주는 형태로 야당 요구를 부분 수용, 회의가 속개되지만 장관의 태도는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이번에는 이에 화가 치민 야당 의원이 질의 도중에 장관을 향해 버럭 "하품 하지 마!" 하고 외친다. 어떤 장관은 거듭되는 질의에 한껏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찌르고 질의한 의원을 노려보며 건성으로 답변한다.
■ 속이 답답했던지 답변 도중 밖으로 나가 줄담배를 피워대는 장관의 모습은 애교에 가깝다. 의원들의 행태라고 다르지 않다. 장관이 열심히 답변을 하는데 휴대전화로 정신 없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여당 의원의 질의에 야당 의원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야유를 보내고, 여당 의원들이 맞고함을 쳐서 질의내용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답변하는 장관에게 "바보!"라고 일본에서 가장 심한 욕을 퍼붓고, 여성의원이 설전에 뛰어들기 무섭게 곧바로 대놓고 "시끄러워, 아줌마!"라고 퍼부어 어안이 벙벙하게 한다.
■ 한국 국회의 모습에 견주어 별 것 아니랄 수 있지만 국민의 언어생활 실태에 비추면 거의 멱살잡고 침 뱉는 수준이다. 한 일본 친구가 이런 제의를 했다. 일본의 대표적 욕인 '녀석''바보' '짐승'을 국회에서는 각각 '무''홍당무''순무'로 바꾸기로 여야가 합의하면, 욕을 하려다가도 피식 웃으며 끝나지 않겠느냐고. 한국 국회에 대입하는 순간 수많은 야채 이름을 떠올려야 했다. '상추''양상추''배추''양배추' '쪽파''대파''양파''고추''피망'정도는 돼야 각종 막말에 대응할 수 있을 듯했다. 2월 임시국회는 부디 야채 가짓수라도 줄일 수 있기를.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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