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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의 선비 이야기] <20> '동의보감'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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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의 선비 이야기] <20> '동의보감' 다시 보기

입력
2010.02.0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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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조찬강연에서 김호 교수의 '<동의보감> (東醫寶鑑)의 역사적 의미'를 들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았다.

<동의보감> (25권)은 1610년(광해군 2) 허준(許浚)이 편찬한 의서다. 그런데 이 책이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이 되었다. 왜일까? 그럴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김호 교수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했다. 하나는 향약(鄕藥)을 집대성한 의서라는 점이요, 다른 하나는 16세기의 성리학적 심성론을 투영한 새로운 의학서라는 점이라 했다.

물론 한의학(漢醫學)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약재는 토산품이어야 효과가 더 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다. 따라서 향약을 조사하고 실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하여 고려 말 이후 <향약재생집성방> · <향약집성방> 등 많은 경험방(經驗方), 속방(俗方) 들이 나왔다. <동의보감> 은 이러한 의학지식을 집대성한 것이다.

그런데 <동의보감> 서문에 선조는 "사람의 병은 다 제 몸을 보살피지 못하는 데서 생기므로 수양하는 방법을 먼저 쓰고 약과 침, 뜸은 그 다음에 쓸 것이며, 여러 가지 처방이 번잡스러우니 되도록 요긴한 것만 추려낼 것이다.

산간벽지에는 의사와 약이 없어서 일찍 죽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향약(鄕藥)이 많지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니 이를 분류하고 고을 이름을 함께 적어 백성들이 알기 쉽게 하라!"고 했다. 정확한 편찬지침을 내린 것이다. <동의보감> 의 편찬에는 허준을 비롯한 의원들뿐 아니라 유학자들도 동참하게 했다.

허준은 동아시아의 의학권역을 중국의 북의(北醫), 남의(南醫)와 조선의 동의(東醫)로 나누어 동의의 독자성과 우수성을 내세웠다. 이는 조선 주자학이 중국 주자학을 모본으로 하면서도 독자성을 확보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성리학은 도교·불교의 형이상학을 받아들여 종합적인 동양의 철학을 확립했고, <동의보감> 은 이러한 성리학 체계를 의학에 도입해 인륜의 정당성을 자연의 법칙으로 설명해 성리학 이론의 과학적 근거를 얻게 했다.

이러한 예방과 수양의 의학서인 <동의보감> 은 곧 중국과 일본에 전파되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에는 이러한 철학적인 측면보다 실용적인 탕약편만 보급되었다. 성리학적 뒷받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리학에서는 하늘에서 품부된 천리를 인욕이 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심성수양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경(敬)이 그것이다.

인간의 몸도 3강5륜을 지키고 하늘에서 품부한 착한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동의보감> 은 16세기에 성립된 성리학적 철학체계 위에 개발된 조선적인 의학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출판된 이후에 이와 같은 책이 다시 나오지 않은 것도 이 책의 시대성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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