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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의 논형] 안중근 의사의 나라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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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의 논형] 안중근 의사의 나라 걱정

입력
2010.02.01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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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새해 벽두에 예술의 전당에서 계속되고 있는 안중근의사의 유묵전을 보러 갔다. 살아 있는 글씨에서 고인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국내외에 흩어져 있던 친필들과 자료를 정성스레 모아 준비한 전시였다.

안의사의 친필을 보면서 독립 의기와 동양평화의 정신이 그대로 살아 있음을 발견했다.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人無遠慮 難成大業), '나라를 위해 몸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爲國獻身 軍人本分), '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강철 같아야 하고, 의사는 위난에 처해도 기개가 구름 같아야 한다'(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 안의사가 남긴 글의 메시지는 아직도 이렇게 생생하다.

유묵전에서 만난 우국충정

둘러보던 나를 얼어붙게 만든 것은 사형집행 5분전에 찍은 사진이었다. 모친이 장만해준 흰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단정하고 늠름한 선비의 자세로 앉은 모습이었다. 전율을 느꼈다. 죽음 직전의 그 당당하고 생사를 초월한 눈빛 때문이 아니라, '여기 서 있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물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친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주권독립국가에서 풍요롭게 살고,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나의 인생을 설계하고, 우리의 미래를 논하고, 세계 어디를 갔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1909년 10월 26일 동양의 거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안의사의 총을 맞고 불귀의 객이 되었다. 헌법학자인 나는 그가 누구인지 잘 안다.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함대의 침략으로 시작된 혼란 가운데서 국가 위기를 느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문하로 들어가 시국을 배우고, 1862년 영국공사관에 불을 지르는 사건을 벌인 다음해 영국 유학을 떠났다. 1868년 메이지(明治)유신 때는 근대화 혁명에 몸을 내던졌고, 유신이 성공하자 1871년 이와쿠라(岩倉)사절단의 부사로 1년 반 동안 미국과 유럽 각국을 시찰하고 돌아와 메이지 정부의 근대화 정책에 투신했다.

미국과 서유럽 시찰을 통해 근대 국가 건설에 헌법이 필수적임을 본 그는 1882년에 헌법조사단을 이끌고 프로이센으로 건너가서 헌법학자 로렌츠 폰 슈타인(Lorenz von Stein)에게 헌법 수업을 받고 1년 넘게 헌법 현실을 조사하고 왔다. 의회주의자인 그는 1885년 봉건적 태정관 제도를 폐지하고 서유럽 내각제도를 도입, 초대 총리대신에 취임하였다. 이때 우리는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김옥균, 서재필 등 선각자들은 구사일생으로 일본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부지하던 때다.

이토는 1889년 자신이 구상한 헌법안을 통과시켜 '대일본제국헌법'을 공포하고, 헌법교과서 <헌법의해(憲法義解)> 를 출간했다. 이때부터 헌법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미노베 다츠키치(美濃部達吉), 호즈미 야쓰카(穗積八束), 우에스기 신키치(上杉愼吉) 같은 학자들이 나왔다.

이토의 꿈은 일본을 아시아의 프로이센으로 만들고 스스로 아시아의 비스마르크가 되는 것이었다. 1905년 그는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조선의 초대 통감으로 부임했다. 4년간 조선을 요리한 다음 은퇴하여 그가 실현한 동아시아의 꿈의 현장을 보러 오다가 결국 황천길로 떠났다. 안의사가 이토를 죽이자 당시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들은 이승만이 안중근과 같은 나라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석사학위를 주지 않았다.

정치판 싸움에 교훈 삼아야

당파싸움으로 세월을 보내고 족벌세력들이 끼리끼리 해먹다가 나라가 거덜난 상황에서 우리는 결국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다. 꼭 100년 전 일이다. 지금도 정치판은 정신 없이 싸운다. 연장 전시를 하는 지금까지 안의사 유묵전에는 그 많은 고관대작은 한 사람도 다녀가지 않았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실상이다. 눈앞의 권력 투쟁에 빠져 있는 이 땅의 권력자들이 새겨야 할 글귀가 눈에 띈다.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

정종섭 서울대 교수 · 새사회전략정책硏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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