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이 관통하는 한적한 농촌인 전북 임실군 덕치면, 인구 1,300여명에 불과한 이곳에 요즘 생동의 기운이 감지된다. 그 변화의 중심에 이 지역 토박이 작가 김용택(62) 시인이 자리하고 있다. 김씨가 태어나 살고 있는 장암리를 비롯해 일중리, 천담리, 물우리 등 덕치면 복판에선 마을 전체를 ‘문학 테마 마을’로 만드는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이 올해부터 시작됐다.
김씨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당시 출퇴근로였던 장암리_천담리 10리길은 ‘아름다운 길’로 조성돼, 6일부터 매월 첫째주 토요일에 김씨와 독자들이 함께 이 길을 걷는 문학 행사가 열린다. 또 김씨의 유명세 덕에 그가 근무하는 지역 학교에 유학 오는 학생들이 늘면서 고령화돼가던 마을에 어린 주민들도 꽤 늘었다. 문학이 한 마을을 살리고 있는 셈이다.
김씨는 이 사업의 가장 중요한 자문역이다. 문기섭(48) 사업추진위원장은 “김 선생님은 유명 문인인 동시에, 내 초등학교 스승이자 마을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주민”이라며 “올해 세부 개발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 선생님의 의견을 적극 반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화와 예술을 통해 마을 공동체를 되살리자는 취지로 결성된 민간단체인 ‘예술과마을네트워크’가 지난달 29일 김씨가 살고 있는 장암리 진뫼마을을 찾았다.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대표를 맡아 2009년 2월 발족한 이 단체는 그 해 11월부터 매월 예술가가 거주하는 시골마을 서너 곳을 답사하며 예술과 마을이 상생할 수 있는 바람직한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촌향도로 주민들이 고령화되고, 여러 개발사업에 휘말리면서 의사소통 구조가 깨지고 있는 것이 시골 마을의 현실”이라며 “이런 위기 상황에서 예술가들이 마을에 정주하며 주민들을 소통시키고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는 등 긍정적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3년 전 경기 여주 도리마을에 귀농해 마을의 젊은 일꾼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시인 홍일선씨, 마을 미술관을 만들어 어린이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경북 봉화 비내리마을의 화가 류준화씨 등을 예로 들었다.
김용택 시인은 “임실군에서 문학관을 지어주겠다는 제안도 받았지만, 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더 좋은 사업이 있다는 생각에 고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 봄에 살고 있는 집을 개조해 한 달에 한 번 꼴로 어린이들에게 글짓기와 그림을 가르치고, 생태체험을 하는 ‘가끔 열리는 학교’를 열어볼까 구상 중”이라며 “우선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시범운영해본 뒤 타 지역 학생도 받아들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실= 글ㆍ사진 이훈성 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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