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언론에서는 취임 1년을 맞은 오바마 대통령의 공과 평가가 한창이다. 집권 1년이 갖는 상징성도 크지만 1년 전 새 시대를 연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그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각별할 수 밖에 없다.
말 많고 탈 많은 취임 첫해
오바마의 1년은 격정적이었다. 민주주의 체제가 정착된 선진국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에너지와 역동성이 분출된 시기였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굴곡이 심하고 논란이 많았다. 예측 가능한 생활에 익숙해있는 국민이 "일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한다"며 현기증을 호소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진영은 오바마의 개혁을 역사의 책무로 여겼고, 공화당 등 보수파들은 민의를 저버린 독불장군 정치로 몰아붙였다. 그 결과 출범 당시 80%가 넘던 지지율은 1년도 안돼 50%선 밑으로 떨어졌다. 이런 롤러코스트식 지지율 등락을 겪은 대통령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완승을 거뒀던 1년 전 대선 분위기도 온데 간데 없다. 민주당이 오랫동안 지역정치를 장악했던 뉴저지, 버지니아의 주지사 선거에서 패배한 데 이어 진보의 아성이라던 매사추세츠에서마저 공화당에 상원 의석을 내주는 참담한 결과가 나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공화당에게서 의석을 빼앗은 1952년 이후 60여 년간 굳건히 지켰던 텃밭이었으니'매사추세츠에서 패했다면 민주당이 안전한 곳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언론이 1년 만에 천당과 지옥을 냉온탕 드나들 듯한 오바마의 1년에 대해 요란을 떨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오바마의 1년이 실망스럽다고 한다면 원인은 몇 가지가 거론된다.
우선 너무 좌파 일변도의 정책을 폈다. 개혁을 이유로 정부 개입을 확대, 천문학적 재정적자를 초래한 데 대한 반감이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또 오바마의 경제정책을 이념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국민은 전에 볼 수 없었던 '큰 정부'에 당혹스러워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정부의 간섭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미 국민이 공화당의 정략적 파상공세에 현혹됐다고 할 수 있다. 한 칼럼니스트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우파의 나라다. 진보적 지도자라면 자신이 지나치게 좌파적이라는 것을 숨길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개혁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는 지적도 있다. 집권 1기 정부가 흔히 하는 실수이지만 대선 승리에 도취된 오바마 역시 '개혁적이면 OK'라는 맹신에 빠졌다. 뉴스위크는 오바마 대통령이 너무 이성적으로 행동해 국민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다는 이색적 분석을 내놓았다. 냉정함과 지적 안정감, 깊은 사고는 대선 승리를 이끈 미덕이었지만,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지나치게 차갑고 초월적이라는 오해를 사는 악덕이 됐다는 것이다.
화합의 정치를 개혁 동력으로
27일의 국정연설은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개혁 비전을 국민에게 직접 밝힐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정권이 처한 문제를 과거 미국이 맞닥뜨렸던 '역사적 도전'과 동일시함으로써 야당과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데는 실패했다. 국민이 듣고자 한 것은 이런저런 경제대책이 아니라 정치를 유연하게 풀어나가는 방법, 즉 의회정치를 어떻게 정상화하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부족했다.
워싱턴이 일찌감치 중간선거 모드로 바뀌면서 건강보험 등 개혁은 더욱 어려워졌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웅장한 연설이 아닌 행동"이라고 한 공화당의 지적에 공감이 간다.
황유석 워싱턴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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