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인 왕은철(54) 전북대 교수가 해외 저명 작가 9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묶은 <문학의 거장들> (현대문학 발행)을 펴냈다. 국내 인터뷰어가 외국 문학가 인터뷰집을 낸 것은 드문 일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나딘 고디머와 J M 쿳시를 비롯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표 작가 안드레 브링크, 각광받는 중국계 미국 작가 하진,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 등 인터뷰한 작가들의 면면이 쟁쟁하다. 9명 모두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생존 작가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 문학의>
인터뷰는 1998년부터 2009년 사이에 이뤄졌다. 왕 교수는 남아공 케이프타운대 객원교수로 있던 1998~99년 남아공에서 활동하는 쿳시, 브링크, 고디머를 차례로 만났다. 미국 워싱턴대에 파견됐던 2005년에는 하진과 불교에 귀의한 흑인 소설가 찰스 존스, 페미니즘 소설가인 세나 지터 내스런드와 낸시 롤스를 만났다. 가장 최근에 만난 사람은 미국의 퓰리처상 수상 시인 나타샤 트레서웨이, 지난해 4월 방한 당시 인터뷰했다. 왕 교수는 "199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고디머를 제외하면, 쿳시 등 다른 작가들은 내가 인터뷰할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생소했다"며 "한국 독자들에게 좋은 작가들을 소개하기 위해 인터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왕 교수는 자신이 만난 작가들을 '아웃사이더'로 통칭했다. 남아공에서 만난 세 작가는 흑인의 땅에 사는 백인 작가이고 하진, 존슨, 롤스, 트레서웨이는 미국 내 유색인 작가다. 그 중엔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에 맞선 고디머와 브링크를 비롯해 가부장제, 인종 문제 등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작품을 쓰는 이들이 많다. 왕 교수는 "주변인의 시선으로 자기 사회를 포괄적이고 예리하게 바라보는 아웃사이더 작가에게 평소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고디머, 쿳시, 브링크는 이미 영문학의 주류로 당당히 올라섰고, 다른 작가들도 왕성한 활동으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이들 덕에 영문학의 지평도 넓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하기 가장 까다로웠던 작가로 그는 쿳시를 꼽았다. 케이프타운대 객원교수로 있을 때 쿳시가 그 대학 영문과 교수여서 자연스럽게 교제하고 인터뷰할 기회도 얻었지만, 막상 인터뷰를 하자 쿳시는 질문보다도 짧은 답변으로 일관했다. 자기 작품의 해석에 대한 질문엔 더욱 그랬다. "정말 예민한 작가여서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며 질문해야 했다. 때론 질문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답이 돌아와 나 또한 예민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답변까지 포함해서, 쿳시의 발언은 짧지만 매우 의미심장했다." 왕 교수는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조차 인터뷰를 안했던 쿳시가 인터뷰에 응한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고디머는 1999년 인터뷰 당시 76세의 고령임에도 불구, 정력적으로 대화에 임해 왕 교수를 놀라게 했다. 당초 1시간만 인터뷰를 하겠다는 고디머 측의 통보를 받고 실망했던 왕 교수는 노작가의 역동적 답변이 3시간 가까이 이어지자 비행기 탑승 시간 때문에 먼저 인터뷰를 끝내야 했다. 왕 교수는 "작은 체구의 노작가가 보여준 확신에 찬 답변과 결연한 표정에서 거인의 모습을 느꼈다"며 "고디머가 그렇듯, 작가의 말투와 몸가짐은 그의 작품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예컨대 쿳시는 자신의 소설처럼 본질적인 것만 짚어 짧게 말하는 스타일이다. 초고를 쓴 뒤 최소 20번 이상 손질한다는 하진의 말은 그의 소설의 탄탄한 구조를 절로 떠오르게 했다.
왕 교수는 인터뷰 대상 중 쿳시, 하진, 고디머, 브링크, 호세이니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작가 인터뷰를 충실한 번역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여긴다. "인터뷰 전에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고 궁금한 점을 작가에게 직접 확인했다. 덕분에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감을 잡고 번역을 할 수 있었다." 왕 교수는 "아직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다른 4명의 작품도 번역해 보고 싶다"며 "특히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을 여성적 입장에서 다시 쓴 롤스의 소설 <나의 짐> , 흑인 성매매 여성을 화자로 한 트레서웨이의 시집 <벨로크의 오필리아> 를 먼저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벨로크의> 나의> 허클베리>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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