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판매회사 이동제가 시행(1월25일)된 지 일주일을 맞았다.
이 제도는 번호를 바꾸지 않고 통신사만 바꾸는 '번호이동제'처럼, 펀드는 그대로 둔 채 펀드를 판매한 금융기관만 바꿀 수 있게 한 것.
고객에게 금융기관 교체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펀드를 팔기만 하고 애프터서비스는 하지 않는 금융기관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나아가 서비스 경쟁 및 수수료 인하경쟁을 촉발시키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시행초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아직은 불편과 무지, 홍보부족 투성이라는 지적이다.
불편한 이동
"펀드 판매회사를 바꾸시겠다고요? 잠시만요. 우선 업무처리 매뉴얼부터 좀 봐야겠습니다."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의 A은행 지점 창구. 25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펀드판매회사 이동제가 일선 창구에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기자가 '고객'이 되어 펀드판매사를 바꿔보기로 했다.
기자가 "펀드판매회사를 이동하러 왔다"며 상담을 요청하자, 직원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펀드 이동은 처음이어서 업무처리 절차부터 봐야겠다"고 첫마디를 연 직원이 매뉴얼을 찾아 다 읽기를 기다리고 나서야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됐다.
은행직원은 확실히 세부내용을 모르는 듯 했다. 본점에 전화를 걸어 기자의 펀드가 이동이 가능한 상품인지, 계좌확인서 발급을 어떻게 하는지를 물어봤다. 이미 10여분이 흘렀고, 이제 계좌확인서만 발급받으면 끝나는 상황.
그런데 직원 2명이 매달려 무려 40여분을 씨름하더니 '발급 불가'라고 최종 통보를 했다. 이 지점에서 가입한 펀드가 아니어서, 계좌확인서 발급이 안된다는 설명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일단 지점에서 나와 직접 본점 쪽에 발급불가사유를 물어봤다. 본점 직원은 "아직 전산망이 갖춰지지 않아 해당 펀드를 가입한 지점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 가입 지점에 가기가 어려우면 가까운 지점에서 팩스로 받아볼 수는 있다"고 말했다.
다시 지점으로 들어갔고, 팩스로 계좌확인서를 받았다. 계좌확인서 하나 받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1시간 반. 곧바로 근처 B증권사 지점에서 계좌를 개설하고 판매사 변경신청까지 마쳤지만, 결국 펀드 이동에는 무려 2시간이나 걸렸다. '펀드 판매회사를 자유롭게 갈아탈 수 있다'는 당국의 설명이 무색하기만 했다.
다른 펀드이동 고객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5일 이후 펀드를 옮긴 4명의 투자자들에게 물어본 결과, 한결같이 "펀드 이동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반응이었다. 이모(37)씨는 "계좌확인서 발급 절차가 너무 복잡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미한 실적
펀드판매회사 이동제 자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금융기관 직원들조차 절차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 보니 시행 첫 주의 이동실적은 미미한 편이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펀드 이동제가 시행된 25일부터 29일까지 판매사 이동 건수는 총 1,123건으로, 금액으로는 237억원(설정액 기준)이었다. 이는 이동가능한 펀드 전체(설정액 116조2,000억원)의 0.02%이다.
하지만 첫날 103건에 불과했던 펀드 이동 사례는 26일 229건, 27일 273건, 28일 253건, 29일 265건으로 조금씩 늘어나는 모습이었다.
아직 승부를 가리기엔 이르지만 금융권간 판도에선 발 빠르게 자산관리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대대적 펀드고객 유치경쟁에 나선 증권사가 은행에 초반승기를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이동한 펀드 전체 규모 중 37%가, 26일에는 55.2%가 은행에서 증권사로 판매회사를 바꾼 경우였다. 반면 증권사에서 은행으로 갈아탄 경우는 없었다.
한국투자증권 신압구정지점 김영주 차장은 "아직은 옮겨가는 고객도, 옮겨오는 고객도 많지 않다"며 "판매사간 수익료 및 보수에서 차이가 생겨나고 하반기에 해외펀드까지 이동이 가능해지면, 펀드 이동은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보라 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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