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젤라 카터 지음ㆍ서미석 옮김/ 민음사 발행ㆍ736쪽ㆍ2만5,000원
'영문학의 백인 마녀' '요정의 대모'로 불리는 영국의 페미니즘 작가 안젤라 카터(1940~1992)는 동화와 민담을 여성의 시각으로 새롭게 변형시킨 판타지 작품들로 유명하다.
17세기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을 토대로 한 <유혈이 낭자한 방> 을 비롯해 <그림자 춤> <마법 장난감 가게> 등 수많은 소설과 동화를 남겼다. 마법> 그림자> 유혈이>
이 책은 카터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썼던 책으로, 그의 작품세계의 바탕이 된 민담 103편을 모은 것이다. 유럽과 미국, 북극지방, 아프리카, 아시아 등 각 대륙에서 채집된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하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대담하고 고집있는 여성들, 영리한 여인들과 꾀많은 소녀들, 마녀들 등 13개의 주제로 나뉘어진 이 책에서는 여성을 둘러싼 온갖 기이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서구 남성의 시각으로 재단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들은 때로는 잔인하고 외설적이기도 하지만 기이한 매력이 넘친다.
북극 이뉴잇족의 이야기 속 여성인 세르메르수아크는 세 손가락 끝으로 카약을 들어 올리고, 여우나 토끼를 갈기갈기 찢어놓기도 한다.
수리남의 민담 '잠자는 왕자'의 공주는 왕자를 깨울 키스의 기회를 마녀에게 빼앗기자 청문회를 통해 진실을 밝힌다. 그리고 마녀의 뼈로 사다리를, 살가죽으로 카펫을, 머리로 세숫대야를 만들어 복수한다.
아프리카 스와힐리족에 전승되는 이야기에서 사냥꾼의 아내는 함께 살자는 토끼를 따라 집을 나간다. 하지만 먹을것이 풀밖에 없자 토끼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솥에 넣어 삶아버린다.
카터는 서문에서 "세계 각지의 이야기를 모은 것은 인간의 공통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안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다양하고 수많은 반응들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공식적 문화에서 묘사되는 여성성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썼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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