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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중학생 아들의 꿈은 '공무원'

입력
2010.01.31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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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한때 동물농장이었다. 토끼와 자라, 열대어, 장수풍뎅이, 도롱뇽, 올챙이 등을 담은 상자가 아파트 거실과 베란다에 가득했다. 3년 전 단독주택으로 옮긴 뒤엔 닭과 다람쥐, 개미, 미꾸라지도 키웠다. 지금도 강아지 두 마리와 햄스터, 가재, 앵무새 등이 한 식구다. 동물 애호가인 중3 아들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입버릇처럼 생물학자나 동물조련사가 되겠다더니,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은행원으로 바뀌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은행 금고와 창구에 쌓인 돈이 모두 은행원 주머니로 들어가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삶의 고단함을 벌써 눈치채버린 걸까. 최근 <10년 뒤의 나>라는 제목으로 쓴 작문에선 장래 직업으로 공무원을 꼽았다. 경영학과에 진학한 뒤 행정고시를 봐서 5급 공무원이 되겠단다. 그 이유가 걸작이다. '안정적이다, 퇴근하는 시간이 이르다, 스트레스가 적다.' 직업 선택의 기준이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돈'을 거쳐 '안정성'으로 바뀐 것이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직업인 줄 어찌 알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직업

대학이 괜스레 고시학원으로 전락했겠는가. 5급 공무원은 현재로선 최상의 선택이다. 물론 공직 진출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암기형 시험이어서 적성과 창의성 따위는 무시하고 특정 과목을 집중적으로 준비하면 된다. 대신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니, 대학생활의 낭만은 포기하는 게 좋다. '다양한 독서를 통해 전문지식을 닦아야 할 귀중한 시기'라는 따위의 허언에도 절대 귀 기울여서는 안 된다. 수험용 교과서에만 매달려야 고시 폐인의 대열에 들지 않는다.

일단 시험에만 붙으면 탄탄대로다. 진입이 어려울 뿐 공무원만 되면 경쟁에서 빗겨나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다. '노동 유연성'은 민간에만 요구되는 구호일 뿐, '신분 보장'의 단단한 울타리가 쳐진다. 복지부동해도 제 자리만 지키면 승진이 되고 월급도 올라간다. 순환보직제이니 전문성이 없어도 이 부서 저 부서 돌아다니며 경력을 쌓을 수 있다.

민간의 활력과 전문성을 공직사회에 이식하겠다며 개방형 직위제를 도입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순수 민간비율은 20%도 채 안 된다. 해당 부처 공무원이 유리하도록 자격 요건에 진입 장벽을 잘 쳐놓았기 때문이다. 요행히 외부 전문가가 들어오더라도 공직사회의 순혈주의를 극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다른 직업이 따라오기 힘든 최대 장점은 안락한 노후가 보장된다는 점이다. 고시 선ㆍ후배들이 서로 챙겨주는 패거리 문화가 든든한 탓이다. '모피아'(옛 재무부의 영문표기 MOF를 마피아에 빗댄 말)가 대표적이다. 끼리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며 정부 고위직과 공기업 사장은 물론, 민간 금융회사 요직까지 독식한다. 관치와 반시장적 정경유착의 토대가 절로 만들어지니 누이 좋고 매부 좋다.

관료들을 시샘하는 세력은 '공직사회의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고시 중심의 단선적 임용방식을 보완하자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댄다. 석ㆍ박사 등 전문가 집단의 공채와 특채, 개방직 확대, 인턴십 제도의 도입 등 그간 제기된 아이디어도 많다.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초 "공직자를 고시로 뽑는 방법 외에 다양한 인재가 각 방면에서 들어오도록 할 생각"이라고 거들었고, 며칠 전에도 "외무고시로만 뽑으면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외교관 임용방식의 변화를 주문했다. 하지만 반세기 전통을 자랑하는 경직된 채용방식은 요지부동이다. 당장은 관료들과 공생하는 게 편하니 정권도 슬며시 꼬리를 내리기 마련이다.

견고한 폐쇄적 관료주의

고시는 전근대적 과거(科擧)제도와 다를 게 없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우리 사회 지배구조의 정점에 오를 수 있다. 견고한 진입 장벽 안에서 기수로 묶여 자기 세력을 확대 재생산한다. 다양하고 전문화한 행정수요 대응과는 거리가 먼 시스템이지만, 밥 그릇 지키기엔 그만이다. 아들의 공무원 꿈이 향후 10년 내 바뀌는 '불행'은 없어야 할 텐데.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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