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지음 / 예담 발행ㆍ384쪽ㆍ1만2,000원
가장 촉망받는 젊은 여성 시인의 한 사람이자 소설가인 김선우(40)씨의 두 번째 장편소설 <캔들 플라워> 는 2008년 한국사회의 가장 큰 이슈였던 촛불집회를 정면으로 다룬다. 한창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사건을 작품 배경으로 삼은 과단성이 보여주듯 촛불집회에 대한 김씨의 입장은 분명하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참가 규모와 방식에서 전대미문이었던 이 사건에서 "일상의 미학성, 위로와 환대, 따뜻한 우정의 번짐, 새로운 생명의 감각"이라는, 새로운 정신의 탄생을 감지했다. 캔들>
지난해 웹진 '나비'에 연재될 당시 회당 4,000건 안팎의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던 이 소설에서는 '촛불 정신'을 마주한 작가의 희열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김씨는 "촛불집회가 끝나자마자 쏟아진 비난과 냉소, 이듬해 터진 용산참사를 거치면서 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며 "촛불에 깃들었던 생명에 대한 예의, 호혜적 연대에의 열망을 떠올리며 썼다"고 말했다.
소설은 열다섯 살의 캐나다 소녀 지오가 촛불 광장에서 보낸 한 달 동안의 이야기다. 학교와 같은 공적 제도에서 벗어나 할머니, 엄마, 엄마의 동성 애인과 함께 외딴 해안에 사는 지오는 10개 국어를 구사할 줄 알고 심지어 동물과도 소통할 수 있는 신비한 아이. 다분히 비현실적인 인물이지만, 그녀의 존재 덕분에 소설은 논픽션의 색채를 걷어내고 촛불집회를 환상이 가미된 소설적 무대로 탈바꿈한다. 작가가 '촛불' 대신 '양초 꽃' 정도로 번역될 '캔들 플라워'라는 은유적 표현을 제목으로 삼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우연히 한국인 친아버지와 이란성 쌍둥이인 남자 형제의 존재를 알게 된 지오는 그들을 찾으러 한국에 왔다가 회사원 희영, 아마추어 영화감독 연우, 연우의 단짝 수아, 가출한 모범생 민기 등과 어울려 촛불을 들게 된다. 조건없는 환대와 우정이 만개한 광장에서 지오 일행의 인연은 재개발 지역의 가난한 70대 연인, 사연 많은 떠돌이 개 등으로 세대와 종(種)을 넘어서 이어진다. 이렇게 확장되는 우정의 연대에 국가는 공권력 투입 강화로 대응하고, 지오 일행에게도 그 여파가 여지없이 미친다.
10대에서 70대까지, 제도 교육을 거부하는 청소년부터 보수 언론인까지,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키는 소설은 교육, 자연 파괴, 도심 재개발, 선정적 언론 보도 등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적 현실을 종횡무진 꼬집는다. 막 초경을 시작한 지오와 20대 회사원 희영을 중심으로 여성의 몸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진솔하게 펼친다. 인물과 사건의 자잘한 디테일을 살리는, 수다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서술 방식을 통해 작가는 '새로운 생명의식의 탄생'이라는 주제를 감각적으로 부각시킨다.
2007년에 세 번째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2008년에 첫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 를 냈던 김씨는 "시집 출간은 내후년쯤으로 미루고, 다음 장편소설 집필에 곧 착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는> 내>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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