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재개발조합 설립 때 통용되는 '백지 동의서'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유사 소송이 잇따른 가운데 나온 판결이라 조합설립이 취소되는 재개발 사업장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이모(63ㆍ여)씨 등 75명이 부산 해운대구청장을 상대로 낸 재개발정비사업 조합설립 인가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해운대구청은 2007년 1월 우동6구역 재개발조합추진위원회가 토지 소유자 328명 중 267명(81.40%)에게 받은 조합설립 동의서를 첨부해 설립인가 신청을 하자 이를 승인했다. 그러나 동의서는 법에서 요구하는 내용이 기재되지 안은 이른바 '백지 동의서'였다.
재판부는 "재개발조합 설립 인가를 하는 것은 법령상 일정한 요건을 갖추는 행정주체의 지위를 부여하는 행위"라며 "문제의 조합설립 동의서에는 건축물 설계나 철거, 신축에 소요되는 비용 등이 빠져 있어 조합설립이 무효"라고 밝혔다.
조합설립 때 서면동의서를 받는 이유는 당사자들의 동의 여부를 명시적으로 확인해 개발과정에서 발생할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이 동의서의 효력을 엄밀하게 따질 의무가 있는 관할 구청이 외관상 기재사실이 불충분한 부실 동의서를 근거로 조합설립 인가를 한 것은 위법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씨 등은 시공업체 선정과정, 감정평가 과정에서 내분이 일자 2008년 3월 조합설립인가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이씨가 1,2심에서 모두 승소하자, 전국 각지에선 유사 소송이 잇따라, 대형 건설사의 경우 3,4건씩의 조합설립 취소소송에 휘말려 있다. 따라서 이번 판결로 조합설립 취소 사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합설립이 취소되면 해당 사업장은 인ㆍ허가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하기 때문에 장기간 사업지연이 불가피해진다. 시공사도 조합이 없어져 시공권을 박탈당하고, 투자비용도 돌려받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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