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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천국에서 지옥을 찾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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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천국에서 지옥을 찾는 시대

입력
2010.01.31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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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지옥편'인페르노'를 청소년용으로 만든 책의 번역을 마칠 즈음, 인페르노와 관련된 뉴스를 읽었다. 나로선 참으로 낯 선 이야기인데 정리하면 이러하다.

'2010년 최고의 액션 기대작을 한발 앞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올해도 온라인과 콘솔로 수많은 게임들이 출시일을 앞두고 있는데 특히, 게임 비평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내었던 신작 의 데모가 공개된다. 게이머들은 단테의 <신곡> 을 각색한 <게이트 오브 헬> 의 블록버스터를 체험할 수 있다. <단테스 인페르노> 에서는 9층 지옥 - 변옥(limbo), 육욕, 탐식, 탐욕, 분노, 이단, 폭력, 사기, 배반을 차례로 여행하게 되며, 각 층의 죄인들을 볼 수 있다. 청소년 이용 불가!'

마음이 씁쓰레했다. 청소년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작가들조차 읽은 사람이 드문 단테의 <신곡> 에 대한 이야기를 게임프로그램 뉴스를 통해 듣다니!

여기 이야기 하나 더. 영화 <세븐> 에서 연쇄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풀려는 두 형사 데이비드 밀스와 윌리엄 서머셋은 도서관을 찾는다. 그들은 서가에서 책들을 훑더니 두 권의 책을 꺼낸다.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서사시> 와 단테의 <신곡> . 그들은 책을 읽어가며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사건의 열쇠를 찾아낸다. 연쇄 살인사건이 탐식, 탐욕, 교만, 정욕, 나태, 시기, 분노 등 성경에 나온 7가지 죄악을 토대로 벌어지는 것을 알아내고 수사의 방향을 다시 잡는다. 그리하여 지옥 같은 끔찍한 살인은 이제 막을 내리려 한다.

이렇게 책으로 <신곡> 을 만나려는 이들은 점점 줄어드는데, 21세기의 호러 게임이나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처럼 다른 문화 콘텐츠에서도'지옥편 - 인페르노' 차용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며칠 전, 강연 자리에서 청소년들에게 물었다. "왜 사람들은 지옥이라는 테마를 아무 거부감 없이 볼거리, 놀거리, 즐길거리 속으로 불러들이는 걸까? 왜 천국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은 점점 줄어드는 걸까?"

학생들이 거침없이 답했다. "세상이 지옥 같잖아요. 아니, 지옥보다 더 한 것 같아요. 그러니 인간들이 언제 천국을 본 적이 있나요? 상상할 여유도 없어요! 초딩들이 산타클로스 안 믿듯이 우리 나이만 되도 천국 같은 건 안 믿어요! 그리고 마음에 쌓인 게 너무 많으니까 그런 걸 통해서라도 나쁜 놈들 실컷 죽이면서 스트레스 푸는 거예요." "인간이 악마보다 나은 게 뭐 있어요? 잊을 만 하면 들리는 끔직한 뉴스 모르세요?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게 하는, 오늘 아침에도 그런 뉴스 나왔잖아요!"

작가란 엄밀히 말해 여느 사람들보다 더 집요하고 끈질기게 사람과 세상을 읽는 '독자'이다. 이런 독자의 눈으로 읽는 오늘의 세상을 글로 쓴다면 요즘 말로 '최강, 짱, 헐, 허걱, 지옥편' 쯤 될까? 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면 제목은 '사람은 사람 때문에 멸망하고, 사람 때문에 멸종한다' 정도?

그러나 동화를 쓰는 작가들에게는 특별한 사명이 있다. 어린 영혼, 아직 덜 굳고, 덜 낡고, 덜 무정해진 가슴을 가진 청소년들의 편에 서 있어야 하는 권리와 책임도 있다. 그네들 곁에서 우리는 어찌 해야 하나? 책 속에서 지옥 불이 활활 타오른다. 어그러질 대로 어그러진 이 시대의 양심을 새롭게 살려내는 듯하다. 그 불 속에 답이 있을지 몰라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를 따라가 본다.

노경실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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