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지음ㆍ심규호 옮김/에버리치홀딩스 발행ㆍ728쪽ㆍ2만9,500원
춘추전국 시대는 천하무도(天下無道)의 시대였다. 천하에 정의와 공평함이 없는 시대였으나, 동양지성사에서는 하이라이트에 해당되는 시대였다.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등 뛰어난 이론가 그룹들이 제각각의 논리를 뽐내며 자웅을 겨뤘고 연합과 분열을 거듭하며 다양한 사상이라는 문화유산을 남겼다. 중국 문화, 나아가 아시아 문화의 핵심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코 이 시대를 에둘러 갈 수 없다.
중국의 전방위 지식인으로 꼽히는 이중톈(63) 샤먼대 교수는 <백가쟁명> 에서 중국의 르네상스인 춘추전국 시대를 수놓았던 사상가들의 삶과 사상을 해설한다. 공자란 누구인가? 왜 유가와 묵가의 논쟁은 일어났는가? 유가와 법가 논쟁의 본질은 무엇인가? 같은 핵심적 주제들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21세기의 우리가 그것들을 어떻게 계승해야 할 것인가를 제안한다. 백가쟁명>
'제자백가' 혹은 '사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릴 독자들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저자 이주톈 특유의 재담은 여전하다. 복잡한 이론을 우회하지 않고 고갱이에 접근해 들어가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분석하고 개념화하는 솜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가령 그는 제자백가의 핵심인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네 학파의 이론의 차이를 분석하면서 유가 사상은 '문사의 철학', 묵가 사상은 '무사의 철학', 도가 사상은 '은사의 철학', 법가 사상은 '모사의 철학'이라는 식으로 귀에 쏙쏙 들어오게 구획 짓는다. 중국사상에 대한 대중 입문서로 100점을 줘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선진 제가가 남겨준 이 다양한 정신적 유산을 어떻게 이어받아야 할 것인가. 그는 "사상, 관점, 입장 및 방법은 서로 각기 다르지만 그들은 중국이 거대한 변혁기에 처해 있을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천하태평을 희구했다. 가능한 여러 학파의 장점을 수용하여 이를 통일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인들만을 위한 얘기는 아니다. 사상적 거처를 찾지 못한 채 혼란에 빠져 있는 21세기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제안으로 들린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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