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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박근혜와 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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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박근혜와 세종시

입력
2010.01.2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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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의원은 세종시에 대해서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세종시는 그에게 높이 뛰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고, 출구를 잃은 채 헤어나지 못하는 수렁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27일 세종시 수정 관련 법안들을 입법예고함으로써 '세종시 전투'에 돌입했다. 여권 주류는 이 법안을 2월 말이나 3월 초에 국회에 제출하고, 4월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찬반 논란이 대립하는 가운데 정부가 입법예고를 하자 법안 통과의 열쇠를 쥔 박근혜 의원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약속'이 아니다

박 의원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해 왔다. "수없이 토론하고 수없이 고민한 끝에 국회에서 법을 만들었는데 이제 와서 바꾼다면 국민과의 약속은 어떻게 되겠느냐", "수정안이 당론이 되더라도, 충청권 여론이 수정안 찬성으로 기울더라도 나는 반대하겠다"고 그는 거듭 주장했다.

약속을 지키는 정치를 강조하는 그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세종시 논란의 핵심은 정부부처를 서울과 세종시로 분할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는 것이다. 이 논란이 정국을 뒤흔드는 상황에서 그의 '약속론'은 너무나 교과서적이고,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 그는 이제 '약속론'에 머물지 말고 핵심을 말해야 한다.

박 의원과 세종시의 만남은 행복한 인연이 아니다. 그는 개인이 아닌 당 대표로서 여러 가지를 고려한 끝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수도안과 행정도시안에 협력했다. 여소야대이던 16대 국회는 행정수도법을 만들었고, 행정수도법이 헌재에서 위헌판결을 받자 17대 국회가 다시 행정도시법을 만들었는데, 당시 박 의원은 한나라당 대표로 찬성 당론을 이끌었다.

지난 대선에서도 박 의원은 이명박 후보의 부탁을 받고 충청도에 가서 "세종시 공약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랬는데 이제 와서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원안을 백지화하겠다니 승복하기 힘들 것이다.

총선과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충청표를 무시할 수 없었던 당대표의 고민을 지금 비난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대선후보 경선의 경쟁자였던 이명박 후보의 부탁을 받아들여 충청도 유권자들에게 세종시 건설을 약속했던 박 의원이 지금 어떤 심정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할 일은 세종시에 대한 자신의 약속이나 부담에서 벗어나 수도 분할과 국익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수도 분할이 행정의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릴 뿐 아니라 자족기능을 갖추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 언제 닥칠지 모르는 통일시대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 등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이 동감하고 있다. 다만 자신들이 협조하여 만들었던 법, 수없이 시행을 약속했던 법에 대해 손바닥 뒤집듯 백지화를 주장하면서 '노무현의 대못'이라고 비난하는 여권의 행태가 한심해서 지지를 유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선거 중에, 또는 선거를 앞두고 한 정치인의 약속을 '돌에 새긴 맹세'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거의 없다. 비가 쏟아지는 날 다리 밑에서 연인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기다리다가 물에 빠져 죽은 미생의 고사를 '후세의 귀감'이라고 칭송하는 박 의원을 보며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적인 약속이라면 물에 빠져 죽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국익이 걸려 있는 공적인 약속에서 반대의견이 있다면 마땅히 귀 기울여야 한다. 토론도 거부하며 미생처럼 물에 빠져 죽어도 좋다는 식의 태도는 공인으로서 문제가 있다.

세종시는 박근혜에게 기회다

지금 박 의원은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종시 문제로 정치력을 가름하는 시험을 치고 있다. 그가 중요시해 온 '국가관'과도 연결된 시험이다. 정치적 계산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장기적인 손익계산서는 결국 양심을 걸고 국익을 위해 바른 판단을 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세종시 논란은 박근혜에게 수렁이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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