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취재차 지방에 갔다가 식당에서 한 주민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함께 있던 이웃들에게 한 이야기를 옮기면 대강 이렇다.
"공연히 민박을 했어. 손님 비위 맞추기 너무 어려워. 몸도, 마음도 모두 풀어져서 보기에 민망했어. 속옷 차림으로 돌아다니지 않나, 지저분하다고 트집 잡지 않나. 돈 자랑은 어찌나 해대던지. 우리를 종처럼 부리려고 했어. 비위 맞추려다 속이 뒤집혔지. 그렇게 3년 해서 얼마 번지 알아? 800만원이야, 800만원. 그래서 민박 때려치웠지. 자네들도 민박해서 공연히 속 끓이지 말아."
다소 과장이 섞인듯한 그의 말을 듣다가 며칠 전 아이티를 들른 크루즈 여행자들을 떠올렸다. 제 정신이라면 참사를 겪은 그 나라를 여행지로 삼을 수는 없을 터. 그런데도 아이티를 방문한 것은 현지 주민의 요구 때문이었다. 아이티는 그렇게 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었던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크루즈선이 도착한 날 일부 주민은 악기를 연주하며 여행자들을 반겼다.
무심코 넘길 수도 있는 이 두 사례를 접하며 여행을 할 때도 배려할 상대가 있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 내 돈 내고 한다고 해서 나 좋을 대로, 나 편할 대로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말이다.
여행을 할 때 우리는 흔히 멋진 경치, 유쾌한 체험, 편리한 시설, 친절한 서비스 등을 기대한다. 그것이 충족되면 그 이면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어느 정도 여행의 속성에서 기인한다. 흔히 여행을 통해 낯선 사람, 낯선 문화와 만나고 시야를 넓히며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현실도피다. 경치도, 휴식도, 낯선 세계와 만나는 것도 좋지만 복잡한 현실에서 탈출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다. 현실에서 벗어났으니 그저 즐기고 싶고, 머리 아픈 것은 외면하고 싶다.
하지만 여행은 완벽한 현실도피가 될 수 없다. 여행에서 돌아와 구체적인 삶의 문제와 재회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여행지에서조차 시선을 조금만 달리 주면 현실을 피할 수 없다. 히말라야로 짐을 나르는 포터들의 초라한 행색이나, 관광상품으로 전락한 소수민족이나, 관광객을 태우도록 폭력으로 코끼리를 길들이는 것은 여행지에서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많은 여행자들은 그것을 보면서도 들떠서, 즐거움에 취해, 그러려니 하며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현지인을 생각하고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여행을 하자는 운동이 최근 활발하다. 공정여행 혹은 책임여행이라고 하는데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현지인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고 그곳의 자연을 지키며 내가 쓴 돈이 그들의 삶에 이익이 되도록 하는 여행이다. 이미 많은 젊은이가 공정여행을 하고 있는데 사실 그들이 할 수 있는 획기적인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포터에게 방한 방수 장비를 제공했는지, 코끼리를 왜 학대하는지 등의 작은 질문이라도 다국적 관광자본에, 여행사에 던지면 그것이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물론 모든 여행자가 그럴 수는 없다. 여행을 왔으니 만사 잊고 즐기고 싶은 것, 이해할 수 있다. 현실을 잊기 위해 여행을 왔는데 또 다른 현실에 상심하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더라도 여행의 또 다른 면 혹은 여행지 사람의 삶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을 알 때 돈 자랑을 피하고 현지 문화를 존중하며 여행 에티켓을 지킬 수 있다.
박광희 생활과학부 전문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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