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의 오차도 없어 보였다. 종잇장 같은 0.7㎜ 두께의 유리 기판은 거대한 로봇팔에 의해 정밀 생산 작업에 필요한 각 공정의 정확한 위치로 쉴새 없이 옮겨졌다.
3개 층에 마련된 생산공정을 차례로 거친 이 유리기판은 LCD(액정화면) 패널의 반제품 상태로 바뀌었고, 완제품을 만드는 모듈라인 부서로 빠르게 이동됐다.
일일 처리 물량이 늘어난 탓에, 각 공정 과정에선 부품 부족을 알리는 노란색 표시등이 연신 360도로 회전을 이어갔다.
27일 오후 4시, 경기 파주 LG디스플레이 8세대 LCD 패널 생산라인 가운데 TFT(박막 필름 트랜지스터) 작업이 한창인 클린룸 내에 비친 모습은 마치 정밀하게 설계된 전자 회로도를 연상케 했다.
8세대 LCD 패널 생산라인은 지난해 LG디스플레이가 사상 처음으로 연간 매출 20조원을 돌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주역이기도 하다. 이 곳은 현재 거래처에서 쏟아지는 주문량을 채우느라, 단 1초도 쉴 틈이 없단다.
실제, 공장을 찾은 시간에도 원재료인 유리 기판을 실은 무진동 차량이 많은 협력업체 직원들과 함께 줄을 지어 물량 하역 작업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직원들조차 이런 풍경이 낯설 정도"라는 관계자의 말에 이 곳이 요즘 얼마나 바빠졌는지를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1년 중에 겨울철이 비수기임을 감안하면, 이런 현상은 근래 보기 드문 일이에요. 이번 설 연휴에 공장을 계속해서 돌려도 주문량을 100% 맞추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공장 안내를 맡은 하민용 LG디스플레이 파주경영지원담당 부장의 목소리에선 힘이 넘쳤다.
하 부장의 설명을 반영이라도 하듯, 클린룸 인근에 마련된 '리모트 오퍼레이팅 시스템' 파트 직원들은 클린룸내의 생산 공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컴퓨터(PC) 모니터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계속된 작업으로 인해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LCD 패널 고장과 검사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현장에서 만난 박원락(31) 사원만족팀 사원은 "예년 같으면 업무를 보는 중간중간에 짬을 내서 티타임을 갖고도 했었지만, 요즘엔 생산 물량이 늘어나는 바람에 그럴 여유조차 없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백라이트와 편광판, 인쇄회로기판(PCB) 등의 부착과 함께 마지막 공정을 완성하는 모듈라인에서도 직원들의 규칙적이고 빠른 손놀림은 2배 이상 빨라졌다는 게 현장 직원의 전언이다. 컨베이어 밸트를 통해 공급되는 물량이 그 만큼 많아졌기 때문이란다.
LCD 업계에서 전통적 비수기로 알려진 올해 겨울철이 이처럼 성수기로 바뀐 이유는 크게 두 가지. 급성장 중인 중국이 춘절(음력 설ㆍ2월13~21일) 연휴와 노동절(5월1~3일)에 대비해 LCD 패널 물량을 대량으로 흡수하고 있는데다, 수요처인 TV 제조 판매 업체들이 올해 예정된 초대형 스포츠 이벤트(2월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 6월 남아공월드컵, 11월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 등) 특수를 누리기 위해 연초부터 재고 확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 부장은 "LCD 패널을 주로 사용하는 세계 TV 제조 업체들이 경기 회복 양상을 보이고 있는 올해를 기회로 보고, 공격경영을 표방하면서 물량 수급이 타이트하게 진행되고 있는 양상"이라고 전했다.
최근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가 분기별 전 세계 평판디스플레이 출하량 현황 및 전망치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인치 이상 LCD와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 등을 포함한 대형 평판 디스플레이의 올해 상반기 출하량 비중은 중국 시장 수요 등에 힘입어 전년대비 5%포인트 늘어난 47%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LG디스플레이도 올해 8세대 라인 증설 등을 통해 내년까지 세계 1위 LCD 패널 생산 능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3차원(3D) 디스플레이 및 태양전지, 전자종이, 발광다이오드(OLED) 등의 선점 노력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정경득 LG디스플레이 8세대 공장장은 "지난해 8세대 라인의 빠른 풀가동과 양산 덕분에 처음으로 20조원 매출을 돌파할 수 있었다"며 "올해도 시장 상황에 맞춰 8세대 증설 라인을 성공적으로 가동시켜 '20011년 수익성 넘버1' 목표를 달성하는 데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주=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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