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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에이지] <1> 와당 문화운동가로 우뚝 선 법조인 유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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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에이지] <1> 와당 문화운동가로 우뚝 선 법조인 유창종

입력
2010.01.2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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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쉘위댄스(Shall We Dance?)'의 주인공은 어느날 갑자기 춤을 배운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도, 이직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가 나중에 전문댄서로 성공했는지조차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확실한 건 그가 춤을 통해 삶의 환희를 맛보았다는 것이다. 길어진 인생을 지혜롭게 살기 위한 '인생이모작'이 화두이다. 대기업 CEO가 트럼펫을 불고, 광고회사 대표는 요리사로 변신한다. 인생의 절정은 때가 없다. 나이를 떠나 인생의 황금기를 찾아 나선 사람들을 소개한다.편집자주

"지금이 제 인생의 황금기입니다. 항상 꿈꾸던 문화운동가로 사니까요."

햇살이 유난히 맑았던 지난 주말 서울 부암동 유금와당박물관에서 만난 유창종(65ㆍ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육순을 넘긴 나이와 서울중앙지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30여년의 공직생활을 감안하면 권위주의가 몸에 배기도 하련만, 그는 문화와 예술을 말할 때면 눈빛이 환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청년' 이었다.

'기와검사'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평검사 시절부터 와당(기와 끝을 막는 막새) 수집에 심취, 국내외에서 손꼽히는 전문가가 됐고 지난해에는 문화재위원으로 선임됐다. 2009년 자신과 아내 금기숙 홍익대 교수의 성을 딴 유금와당박물관을 개관했다.

유 변호사는 "인생 후반기는 할 일이 없는 시기가 아니라 드디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기"라며 "앞으로의 인생은 문화와 예술, 철학의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데 바치고 싶다"고 했다.

검사, 기와와 만나다

유창종 변호사는 200명에 육박하는 법무법인 세종의 변호사들 중 골프를 치지 않는 딱 3명 중 한 사람이다. 골프 대신 그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은 건 기와였다.

기와와의 첫 만남은 충주지청에 근무하던 1978년 식목일이었다. 큰 형님댁에 선물로 드릴 민화를 사려고 들른 고미술상에서 와편 두 점을 거저 얻었다. 그 중 하나에 무늬가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해 8월 운명이 다시 한번 손짓했다. 국보 6호 충주 중앙탑터에 갔다가 돌조각 하나를 주웠다. 나중에 삼국시대 제작된 연꽃무늬 와당인 것이 밝혀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조각품을 지붕에 장식하고 살만큼 우리의 고대가 문명사회였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두근거렸지요."

그때부터 와당이 있는 곳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방방곡곡 찾아 다녔다. 와당의 문화재적 중요성을 알지 못하던 시절, 거저도 주고 개당 1,000~2,000원 정도였던 와당 수집은 지금이나 그때나 박하긴 매한가지인 검사 월급으로 즐길 수 있는 취미 정도였다.

기와검사, 한중일 문화교류사를 추적하다

놀이로 시작했던 와당수집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된 건 증거 추적에 강한 직업정신 덕이었다. 유 변호사는 학계의 정설이었던 고구려 연화문 와당의 중국 전래설을 뒤집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치는 연화문 와당이 서기 436~496년 북조시대의 것인 데 비해 그가 수집한 고구려 연화문 와당은 서기 384~391년 사이에 제작된 것임을 밝혀 중국 학자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은 것이 한 예다.

"연화문 와당은 고구려에서 영향을 주고 중국에서 성숙한 뒤 다시 한국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한중일 문화교류가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교류였다는 증거죠."

법무법인 세종의 중국 베이징대표처 책임자로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바쁜 생활이지만 지난해 9월에는 중국 최고 명문미술대학인 베이징의 중앙미술학원을 설득, 중국 최초로 한국미술사 과목을 개설하는 데 산파 역할도 했다. 11월에는 30여년의 와당연구를 집대성한 <동아시아 와당문화> 를 펴냈다.

기와사랑, 일본을 감동시키다

2002년 유 변호사는 퇴임을 1년 앞두고 중요한 결심을 한다. 평생에 걸쳐 수집한 와당 1,875점을 국립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남보다 일찍 깨우친 사람들이 타인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의무이자 특권"이라는 생각이었다.

그의 나눔 정신은 일본인도 감동시켰다. 2003년 유 변호사는 일본의 이우찌고문화연구소로부터 와당컬렉션을 넘기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우찌의 와당컬렉션은 와당 관련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것으로, 절반은 1987년 이미 국립박물관에 기증됐으나 나머지는 여전히 일본인 소유로 있었다. 그는 "(너무 좋아)소름이 끼치더라"고 했다.

"문화재 환수라는 의미에서 엄청난 의미가 있는 일이었어요. 덕분에 2년간의 변호사 월급과 그나마 딱 한 장 있었던 골프장 회원권을 사례비로 다 바쳐야 했지요, 하하."

김수현 드라마 보다 더 재미있는 인생이 목표

유 변호사는 아내 사랑이 각별하다. 서울에 있을 때는 아내를 위해 매일 아침 안마를 해주고 어디를 가든 손을 꼭 잡고 다닌다. 검사시보 시절 첫 눈에 반해 결혼한 아내는 인생의 반려이자 문화예술 연구의 길을 같이 가는 동지이다.

"검사에서 와당연구가로 거듭 날 수 있었던 건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은 아내의 덕이 큽니다. 부부가 돼 철이 들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재미있고 의미 있는 삶인가, 어떻게 우리 인생을 더 풍성하게 가꿀까 늘 토론하고 깨우침을 얻으며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죽어서 우리 인생 기록을 들고 염라대왕 앞에 갔을 때 '김수현 드라마 보다 더 재미있다'소리를 듣도록 앞으로 30년은 문화운동가로 신나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 유 변호사가 말하는 '풍성한 삶을 위한 5가지 능력'

"나이 육십이면 새로운 것을 시작하면 안 되는 시기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는 세상인데 말이 안되죠. 이때야 말로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맘껏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해요."

그러려면 젊은 시절부터 몇 가지 능력을 키워야 한다. 유창종 변호사는 이를 풍성한 삶을 위한 5가지 능력이라고 꼽았다.

1. 지적 능력 끝없이 배우라. 그 역시 만 60세를 앞둔 2004년 말 인생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데 중국어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중국어 공부를 시작, 지금은 능란한 실력을 자랑한다. 중국어는 회사의 베이징대표처 책임자가 되는 데도 한 몫 했다.

2. 체력 건강해야 의욕이 생긴다. 청년 시절 테니스를 치며 체력을 다졌고 요즘은 매일 새벽 기체조를 통해 심신을 단련한다. 삶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데 도움이 된다.

3. 종교력 종교적 깨우침을 얻으라. 꼭 종교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는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가 하는 철학적 질문에서부터 삶의 의미를 재고하라는 의미.

4. 사회적 능력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종자돈과 좋은 인간관계는 필수다.

5. 감정력 풍부한 감성을 키워라. 문화, 예술, 철학 등 정신적 가치에 대해 음미할 줄 안다면 인생이 더 풍요해진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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