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8년간 핵심 문제 총정리, 합격자 초청 특강, 인터넷 온라인 강의…'
대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을 위한 학원 광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타깃은 '배우는' 학생이 아닌 '가르치는' 교사들이다. 장학사 연구사 등 교육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강의 프로그램의 홍보 문구인 것이다.
통상 3년 정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합격하려면 재수(再修), 삼수(三修)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장학사 시험이다. 공식 명칭은 '교육전문직 임용 시험'.
최근 장학사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게 해주겠다며 서울시교육청 소속 현직 장학사가 3,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사건이 발생해 시교육청은 물론 교육계 전체가 어수선하다. 도대체 장학사가 어떤 자리이길래 교사들이 거액의 '뒷돈'을 아깝지 않게 뿌려대는 걸까. 장학사를 해부해 본다.
교장으로 가는 지름길
장학사는 일선 학교의 예산과 인사에 직접적으로 간여(干與)할 수 있는 자리다. 교사에서 교장으로 가는 길도 있지만, 통상 장학사를 거쳐야 교장과 장학관 승진이 수월하다. 임용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장학사가 되기 위해선 초등 13년, 중등은 15년 이상의 교육 경력에 최근 2년간 근무성적이 '우' 이상이어야 한다. 학생으로 말하면 '모범생'에다 '성적 우수생'의 기준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교장이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이란 인식 때문인지 임용 시험부터 그리 간단치 않다. 초등은 일반, 과학, 체육, 영어 분야로 나눠 장학사를 임용한다. 1차 교직 관련 객관식 시험, 2차 논술, 3차 면접,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성 평가를 치러야 한다. 인성 평가는 해당 교사의 교육 활동, 평판, 수업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해 반영하는 식이다.
중등은 보다 세분화 해 있다. 각 과목별로 장학사를 임용하며 1차는 교양교직 과목 객관식 시험(50점)과 논술(50점), 2차는 면접(30점)과 교과전문성 시험(40점) 및 현장실사(30점)를 거치게 된다. 현장 실사는 교사의 업무추진 능력, 평판, 학급 관리 실태 등이 반영된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에서만 초등 20명, 중등 39명의 장학사를 각각 선발했다. 평균 경쟁률은 과목ㆍ분야별로 다르지만 3ㆍ4대 1에 이른다. 현재 시교육청 소속 장학사는 초등 151명, 중등 199명이다.
장학사로 시교육청과 각 지역청에서 일정 기간 이상(초등 4년, 중등 5~6년) 근무하면 교감 자격 연수를 거쳐 일선 학교 교감이 될 수 있다. 교감은 근무 평정에 따라 자격 연수 뒤 교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 서울 A초등학교 이모 교장은 "교육청에서 근무했던 장학사들이 여러 측면에서 교장 승진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라고 귀띔했다.
일반 교사는 근무 경력 20년 이상이 돼야 교감으로 승진할 수 있다. 특히 근무평정은 교장의 영향이 절대적이어서 다른 조건을 갖추더라도 교장 평가가 좋지 않다면 교감 승진이 어려운 것이 일선 교사들의 현실이다. 이때문에 일단 장학사만 되면 교장 승진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게 교육계의 '정설'이다.
지연과 학연이 좌우
수많은 교사들이 교육계의 '고시'로 통하는 장학사 시험에 몰리고 있지만 임용 과정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면접과 인성평가, 현장실사 등이 계량화한 객관적인 평가보다는 주관적인 평가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현장실사의 경우 현직 교감과 교장 등으로 이뤄진 3~4명의 실사단이 교과그룹별로 시험을 치르는 교사의 학교를 직접 방문해 평가를 하기 때문에 평가관이 누구인지 쉽게 파악이 되는 상황이다.
최근 장학사 매매(賣買) 사건도 따지고보면 이런 구조적인 허점 때문에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구속된 서울시교육청 본청 장학사 임모(50)씨에게 2,000만원을 준 것으로 드러난 서울 강동교육청 소속 장학사 고모(여ㆍ50)씨는 임씨와 같은 학교에 근무했다.
학연과 지연 또한 장학사 시험의 고질병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장학사 시험에 응시했다가 낙방한 지방의 한 교사는 "장학사 시험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학연과 지연이라는 사실은 교사면 다 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장학사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각종 경시대회와 연수에 참여하면서 남들이 인정하는 광범위한 '스펙'을 쌓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라고 여기고 있다. 교육청 윗선과 학연으로 연결된 교사의 합격율이 훨씬 높은 이유에서다. 지방은 특정 고교, 서울은 특정 교대와 특정 대학 사범대 출신이 중용되는 비율이 압도적이다.
엄민용 전국교직원노조 대변인은 "몇몇 특정인이 평가를 하는 방식을 바꿔 학교 혹은 교육청 내부 인사 뿐 아니라 외부 교육 인사들이 참여하는 중층ㆍ다면적 평가가 이뤄져야 교원 인사의 투명성이 보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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