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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과학 아는 엄마 기자]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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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과학 아는 엄마 기자] 생명력

입력
2010.01.2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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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살짝 풀린 참에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놀이터를 찾았다.

놀이기구도 좋아하지만 우리 아이가 놀이터에서 제일 신기해 하는 건 흙이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만 딛다가 폭신폭신한 흙에서 놀면 그렇게 신나 할 수가 없다.

지난 가을 단풍이 한창이던 동네 나지막한 산자락에 데려갔을 때도 고사리 손에 흙을 조금 쥐어주니 까끌까끌한 느낌이 재미있는지 입이 귀에 걸렸었다.

문학작품에서는 종종 흙을 생명력의 원천으로 표현하곤 한다. 생물학적으로 봐도 의미 있는 표현이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근간인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흙 속에 살고 있는 방선균(放線菌)이란 미생물은 놀라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방선균은 곰팡이처럼 번식한다. 나무가 가지를 뻗듯 팔(균사)을 뻗어 땅속 영양분을 빨아먹고 산다. 영양분이 모자라다 싶으면 균사가 여러 마디로 갈라진다.

갈라진 마디가 제각각 떨어져 나와 뭉쳐 포자가 된다. 동물의 몸이나 바람에 실려 다른 장소에 떨어진 포자는 금방 다시 발아한다. 아무 흙에나 떨어져도 그곳 환경에 잘 적응한다.

방선균은 보통 미생물보다 유전자가 좀 더 많다고 알려져 있다. 대장균에 비하면 2배나 많다. 덕분에 방선균은 살아가면서 다른 균보다 더 많은 화학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숲이나 산을 찾았을 때 아련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흙 냄새를 기억할 것이다. 그 냄새가 바로 방선균이 만들어내는 지오스민이란 화학물질이다.

방선균이 배출하는 다양한 물질 가운데는 다른 미생물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항생물질도 있다. 이런 물질을 내뿜고 다니니 다른 미생물과의 생존경쟁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인류는 방선균의 이 같은 생명력을 이용해 생명을 연장해왔다. 방선균이 만들어내는 항생성분을 약으로 개발한 것이다. 안약이나 피부질환 연고에 들어 있는 항생제인 겐타마이신, 성병 치료제인 테라마이신이 바로 방선균에서 얻은 성분이다. 고지혈증 치료제와 항암제 면역억제제 가운데도 방선균에서 추출된 성분이 적지 않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방선균은 약 1,200종에 달한다. 강진의 피해로 신음하고 있는 아이티의 흙에서도 아마 방선균은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최근 인류는 그 흙 위에서 일어난 생명력의 기적을 봤다. 생후 3주밖에 안된 아기가 홀로 1주일을 견뎌내고 구조되기도 했다. 매몰된 사람이 물과 음식 없이 버틸 수 있는 생존시한은 과학적으로 72시간 정도라는데 말이다.

어쩌면 인간의 생명력을 과학으로 설명한다는 게 무모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흙을 좋아하는 것도 생명력을 향한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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