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유행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청결'에 대한 경각심이다. 하지만 수시로 화장실로 달려가 손가락 사이와 손등까지 빡빡 문질러 닦다 보면 문득, 혹시 강박증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된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두 가지쯤 가지고 있다는 강박증 증세, 그 원인과 치료법 등을 알아본다.
강박증은 정신병 아니다
강박증이란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도 어떤 생각이나 장면, 충동이 마음 속에 반복적으로 떠올라 불안해지고, 그 불안을 없애려고 일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질환이다.
증상은 크게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으로 나타난다.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고통스러운 생각이나 충동을 이기려는 노력이 강박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강박행동은 청결 강박, 확인 강박, 반복 행동, 사물 정렬, 수집 강박 같은 외적 행동과, 숫자 세기, 기도하기, 속으로 단어 반복하기 같은 내적 행동이 단독 혹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흔히 강박증을 정신병의 일종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정신병은 보통 현실감이 없어지고 인격파탄이 나타난다.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위 사람만 힘들 뿐, 본인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 강박증을 포함한 신경증 환자는 인격이 온전하게 보존돼 현실감이 있다. 자신도 이런 행동이 지나치고 부적절하다는 것을 느끼지만 스스로 증상을 조절할 수 없다. 따라서 강박증은 그 누구보다도 환자 자신이 괴로운 질환이다.
그러나 이러한 강박사고나 행동이 한두 가지 나타난다고 해서 모두 강박장애는 아니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진단기준에 따르면 적어도 하루에 1시간 이상 강박증세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강박증으로 간주한다.
뇌 이상으로 생겨
강박장애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선천ㆍ환경ㆍ정신적 요인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 작용해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신경 전달물질인 세로토닌과 관련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 전두엽ㆍ미상핵 등 뇌의 특정 부위에 혈류가 늘어나는 등의 이상으로 발생한다는 주장도 있다. 강박장애 환자의 가족 중 35%가 같은 질환을 앓고 있어 유전적인 요인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강박증이 뇌 특정 부위의 화학물질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뇌 질환의 일종이라는 사실이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강박증은 정신병이 아니라 뇌의 신경 전달 물질의 균형이 깨져 발생하는 신체 질환"이라고 말했다.
증세는 주로 청소년기나 초기 성인기에 나타나지만, 간혹 소아기에 시작되기도 한다. 발병 시기는 대략 남성은 6~15세, 여성은 20~29세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빨리 나타나며, 전체 환자의 75%가 30세 이전에 발병한다.
강박증 환자는 스스로 이상을 인지하는데도 불구하고 남에게 드러내는 것이 싫어서 혼자 해결하려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우울증 등 다른 불안장애와 강박성 성격장애, 다이어트장애, 투렛증후군(운동 틱과 음성 틱을 동시에 가진 장애) 등을 동반할 수 있다. 심하면 정신분열병이 나타나거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알코올과 약물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치료 시기가 관건
강박장애는 빨리 치료할수록 증상이 쉽게 호전된다. 치료방법은 정신 치료, 인지 행동 치료, 약물치료, 뇌수술 등이 있다. 가장 많이 쓰는 약물 치료도 효과가 80~90%에 이르지만 여기에 인지 행동 치료를 병행하면 치료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다. 인지 행동 치료로는 환자를 불안감을 촉발하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시켜 그 상황에서 강박행동을 하려는 강한 욕구에 저항하는 법을 깨우치도록 돕는 노출ㆍ반응 차단 기법과, 원치 않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고 불안감을 떨쳐버리도록 집중력을 높이는 사고 차단 요법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치료로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고, 심해진다면 뇌 수술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수술에는 강박장애와 관련 있다고 생각되는 부위의 신경다발을 절단하거나 강박 사고나 행동 조절과 관련된 뇌 영역을 자극하는 장치를 삽입하는 방법 등이 있다. 그러나 수술은 부작용이나 후유 장애를 동반할 수 있어 질환이 5년을 넘기고 다른 치료가 효과적이지 않을 때만 시행한다.
■ 강박장애 체크리스트
1. 병균 감염 우려로 남의 전화 사용을 꺼린다.
2. 추잡한 생각이 자주 들고 그것을 지워버리기 어렵다.
3. 다른 사람보다 정직성에 관심이 많다.
4. 항상 일을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고 늦어진다.
5. 동물을 쓰다듬고 나서 감염될까봐 매우 걱정한다.
6. 어떤 일(가스밸브ㆍ수도꼭지ㆍ자물쇠 잠그기 등)을 여러 번 확인한다.
7. 스스로 매우 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8. 의지와 관계없이 불쾌한 생각이 매일 떠올라 기분 상한다.
9. 다른 사람과 우연히 몸을 부딪치면 신경이 많이 쓰인다.
10. 단순 일상사에 지나치게 신경 쓴다.
11.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 매우 엄하게 키우셨다.
12. 일을 여러 번 반복하기 때문에 내 일은 훤히 안다.
13. 다른 사람보다 비누를 많이 쓴다.
14. 어떤 숫자는 매우 불길하다고 생각한다.
15. 편지 보내기 전에 쓴 것을 몇 번 확인한다.
16. 외출 시 옷 입을 때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17. 청결에 너무 신경 쓴다.
18. 세세한 부분에도 신경 쓴다.
19. 아주 깨끗이 정리된 화장실 사용을 꺼린다.
20.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든 반복 확인하는 것이다.
21. 병균과 질병에 너무 신경 쓴다.
22. 어떤 일을 한 번 이상 확인한다.
23. 일상사에 정해진 절차를 아주 엄격히 따른다.
24. 돈을 만지면 손이 더러워졌다는 생각을 한다.
25. 일상적인 일을 할 때도 세는 버릇이 있다.
26. 세수 시간이 오래 걸린다.
27. 소독약을 많이 쓴다.
28. 일을 반복 확인하느라 매일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29. 저녁에 옷을 걸거나 개느라 많은 시간을 쓴다.
30. 어떤 일을 아주 주의 깊게 해도 잘 안됐다는 생각을 한다.
채점법 그렇다 1점, 아니다 0점. 단, 5, 11, 13, 15, 16, 17, 21, 22, 23, 24, 25, 26, 27, 29 문항은 역으로 채점한다(그렇다 0점, 아니다 1점). 채점 결과 강박장애환자의 평균이 18.86인데, 14~23점이면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이 필요하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일러스트=김경진기자 jin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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