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북한이 서해상에서 해안포 사격을 감행하자 정부의 한 소식통은 "물리적 도발이 아닌 심리적 압박"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의 군사 훈련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때문인지 정부의 이날 대응 기조에도 차분함이 묻어났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북한이 연초부터 보여온 두 갈래 흐름 속에서 파악하고 있다. 한 흐름은 ▦남북 해외공단 공동시찰 평가회의 개최 ▦남측의 옥수수 지원 제의 수용 ▦개성공단 실무회담 개최 합의 등으로 이어지는 북측의 유화적 제스처이다. 이와 동시에 북한은 ▦남측 언론의 '북한급변사태 대비계획' 보도에 따른 국방위원회의 '보복성전(聖戰)' 언급 ▦김태영 국방장관의 '선제타격' 발언에 대한 북한군 총참무보의 경고 등 대결적 자세도 보여왔다.
정부가 일단 예정된 남북대화를 진행하겠다는 방침을 굳힌 것도 "북한이 두 흐름을 오가기는 하겠지만 판 자체를 깨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북한의 이날 움직임을 보면 이런 분위기가 뚜렷이 감지된다. 통일부에 따르면 서해 해안포 사격과 관계없이 남북 해사 당국간 통신 등 교류ㆍ협력 활동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이날 열린 한 세미나에서 "현재로서는 개성공단 실무회담(2월 1일)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는 옥수수 1만톤 제공 등 대북 인도적 지원도 지속한다는 계획 아래 이날 민간 대북지원 단체인 '장미회'관계자 5명의 방북을 승인했다.
그러나 남북의 만남 자체만으로 향후 남북관계를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한 당국자는 "대화를 거부해 북한에 대남 공세의 빌미를 줄 필요도 없겠지만 북한이 도발의 수위를 높이거나 회담에서 다른 얘기를 꺼낼 경우에는 남북관계 전반을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 장관도 "(남북대화에) 일관된 원칙과 의지를 갖고 임할 것이고, 서두르지도 물러서지도 않겠다"고 말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가시화한만큼 정부가 그간 내세운 원칙들을 절대 훼손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가령 북측이 간절히 원하는 금강산ㆍ개성관광 재개 문제만 해도 신변안전보장 제도화 등 선결 조건이 해소되지 않는 한 정부가 북측의 요구에 응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한은 그 동안 '벼랑끝전술에 굴복하지 않은 정권은 없다'는 경험을 학습효과로 체득했다"며 "이번에도 이명박 정부가 위험 감소 차원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고 오판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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