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이네요, 달리 할 말이 있겠습니까."
27일 서울중앙지법 505호 법정.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선 일본인 다치카마 마시키(63ㆍ자유기고가)는 재판장이 "무죄"를 선고하자 지난 시절의 고통을 털어내기라도 하듯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프리랜서 기자였던 마시키씨의 고난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취재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서울대생이었던 유인태 전 의원 등을 만나 인터뷰를 한 뒤 어렵게 생활하던 유 전 의원에게 사례로 돈을 건넨 것이 화근이 됐다.
일본 공산당의 지령을 받고 한국정부 전복을 도모하는 이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의 조사를 받고 기소된 그는 결국 징역 20년을 선고 받았다. 10개월을 복역하고 이듬해 강제추방 된 그는 88년 서울올림픽 취재차 서울에 올 때까지 한국 땅을 밟을 수 없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이규진)는 이날 마시키씨에 대한 재심사건 선고공판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의 억울함은 풀렸지만, 이 사건으로 그가 겪은 고통과 피해는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선고 직후 마시키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지금은 혼자지만, 그때는 한국인 아내와 함께였다. 그녀도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정신병원에 있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세 살 된 자식마저 사고로 부모 품을 떠났다.
평범한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한국에 반감도 있을 법 하지만, 그는 "고생은 했지만 덕분에 한국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강아름 기자 sar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