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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릴라 이윤택의 To be or not to be] <2> 오래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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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릴라 이윤택의 To be or not to be] <2> 오래된 기억

입력
2010.01.26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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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기억이란 것이 얼마만한 용량을 지닐 수 있을까요?

엊그제 일도 잊어먹고, 어떤 때는 딸애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기억은 난데없이 불쑥 떠올라서 한 순간 나를 당황하게 합니다. 어떤 삶의 흔적이 오래 기억되는가? 왜 흐르는 시간 속에 지워지지 않고 끝까지 인간의 무의식에 가라 앉아 있다가 떠오르는가.

내 의식 속에 지워지지 않는 가장 오래 된 기억은 영화 필름으로 비유하자면 롱 테이크의 초점입니다. 색 바랜 흑백 사진처럼 떠오르는 그 기억은 땡볕입니다. 지금도 그 장면만 떠오르면 온몸이 따가운 햇살 아래 노출된 것처럼 따갑습니다. 뜨거운 게 아니라 따가운 것 이지요.

큰 길 한가운데 땡볕 속에 서 있는 어린애는 분명 나 자신입니다.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그 따가운 느낌을 지금도 속으로 고스란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이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 장면을 기억해 내는 지금의 나는 그늘에 숨어서 그 땡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나는 멀리서 큰길 한가운데 땡볕 아래 서 있는 '아이=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과연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기억은 삶의 형상이 지워져 버린 기체 상태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나의 모습은 지워져 버리고 느낌만 고스란히 남아 그 당시의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지요. 나는 빠져 나와 버리고, 삶의 한 느낌만 고스란히 남은 것….

이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 입니다. 인간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항상 흐르는 시간 속에 허겁지겁 떠밀려 사는 것이지요. 그러나 인간의 의식 속에 카메라 자동 셔터 장치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철커덕, 찍어 버리는 것. 이게 무얼까? 내 의식 깊숙한 곳에 카메라 자동 셔터 장치를 해 놓고 삶의 한 부분을 영원히 기억하게 찍어 버리는 주체는 누구일까?

전의식, 혹은 무의식의 작용? 나는 심리적 분석은 딱 질색인지라 기억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석해 낼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내가 유신론자라면 신의 작용이라고 믿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그냥 '아, 이게 바로 영혼이라는 것이구나' 믿어 버립니다.

기억이란 것이 인간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글쎄요, 철 지난 신파극 대본에는 "남는 것은 기억 뿐"이라는 대사가 있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지난 삶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흘러 지나간다고 말합니다. 그 기억의 필름이 끊어지는 순간 숨을 거둔다고요. 직접 체험해 보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흥미로운 가설입니다.

좋은 기억은 지금 되새겨 보아도 살아 있는 기쁨을 느낍니다. 지난 사진첩 속에서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하는 순간, 그 풋풋하고 어설펐던 키스를 기억해 냅니다.

그때 화단 옆에서 소나무 가지에 등을 찔리면서도 아픈 줄 모르고 퍼부었던 키스, 그 여고생의 분홍빛 입술이 지금도 내 뺨따귀 가까이 클로즈 업 되면서 소녀의 입술에서 슬쩍 흘러내리는 침까지 기억해 냅니다. 그 달짝 미지근한 냄새까지. 아, 다 늙어 빠진 주제에 이 망측한 행복감이라니!

지금 그 소녀와 다시 만난다면 어찌될까? 그냥 스쳐 지나가버리게 될까? 그러나 나는 알지. 지금도 가슴 두근거리며 40여 년 전 그 느낌을 생생히 기억해 낼 수 있다고.

그러고 보니 세상이 변하고 인간의 몸이 변하지 실제 인간의 속내는 변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변하지 않는군요.

내게 가장 오래된 기억은 한낮 땡볕의 서늘한 공포감입니다. 내가 문득 눈 떴을 때, 나는 따가운 땡볕 아래 누워있었고, 길가 사람들은 고함을 치고 울부짖었습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섰고, 땡볕 한가운데 서 있으면서도 뒤통수에서 등을 타고 내리는 서늘한 한기를 느꼈습니다.

그 따가움과 서늘함을 한 몸으로 받으면서 내가 느꼈던 당혹감과 뒤따르는 허전함이란…. 대체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나는 몰랐습니다. 단지 내 젊은 날 비 오는 날 관절염처럼 계속 떠오르는 이 오래된, 알 수 없는 기억을 털어내기 위하여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어머니는 내 말을 듣고 상당히 놀라셨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기억의 계곡이 얼마나 깊기에 그걸 기억해 낸단 말인가.

그 때 나는 큰 길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는 미군 지프 밑으로 기어 들어가 잠들었고, 미군 지프는 차 밑에 어린애가 잠들어 있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차를 몰아 나갔고, 어린애는 졸지에 땡볕에 노출되어 버린 것입니다.

어떤 자세로 지프 차 萬?누워 있었기에 바퀴에 깔리지 않고 살아남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살아남았고, 길가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 놀라 엉거주춤 일어섰고, 따가운 땡볕과 뒷골 서늘한 느낌을 동시에 받고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는 아버지가 6.25 전쟁으로 삼척 명태 고방을 홀랑 불태워 먹고 낙향하여 초량 고깃도가 포장지 일을 시작할 때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1953년에서 4년 사이. 내 나이 두세 살 적 기억입니다.

나는 너무 일찍 죽음을 경험해 버렸고, 그 땡볕의 서늘한 공포감에서 가능한 멀리 떠나고 싶었는지…. 흐르는 시간을 가로지르는 유목민적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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