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세대생 강모(25ㆍ건축학)씨는 학교가 있는 서울 신촌에서 신림동으로 이사를 간다. 학교 턱 밑에 살다가 먼 동네로 떠나는 건 순전히 방세 때문이다. 그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5만원을 냈는데, 이마저도 올려달라고 해서 같은 조건에 10만~20만원 싼 신림동으로 옮긴다"고 했다. "이번 학기에 휴학을 할 생각이라 그나마 가능한 결정이었지만 방세가 해마다 올라 졸업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덧붙였다.
#2. 서울 왕십리에서 자취를 하는 대학 3학년 최서연(23)씨는 매일 도서관 대신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살다시피 한다. 300만원 하던 보증금(월세 35만원)을 700만원으로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일방적인 통보에 부근 중개업소를 전전했지만 허사였다. 학교주변 자취방의 보증금과 월세가 죄다 뛰자 방세가 싼 변두리지역까지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다. 그는 "친구들은 취업 졸업 준비에 한창인데, 당장 쫓겨날 처지라 맘 편히 공부할 형편이 못 된다"고 푸념했다.
신학기를 앞둔 서울시내 대학생들이 주거난에 시달리고 있다. 지방 출신 신입생들은 방을 못 구해 쩔쩔매고, 재학생들은 치솟는 방값에 밀려 새 둥지를 찾느라 전전긍긍이다. 학비난, 취업난에 주거난까지 겹쳐 삼중고(三重苦)를 당하는 꼴이다.
본디 연초 대학가는 졸업과 입학이 맞물리는 시기. 취업한 선배가 떠난 자리(방)를 새내기가 채우는 구조는 졸업 뒤에도 학교주변에 맴도는 취업재수생이 늘면서 무너진 지 오래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니 방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올해는 개발바람도 거세다. 재개발과 뉴타운 사업 등으로 철거되는 주택의 거주자들이 인근 대학가로 대거 이주하면서 수급불균형이 더욱 심해졌다. 26일 부동산중개업계에 따르면 서울 대학가 주변 월셋값이 지난해보다 최고 두 배 이상 뛰었다.
대학이 밀집한 서대문구 신촌과 마포구 아현ㆍ신수ㆍ상수동 일대는 인근 뉴타운 개발의 영향을 받고 있다. 연희동의 한성공인중개사사무소 신기수 실장은 "가재울ㆍ북아현 뉴타운 일대가 동시에 공사에 들어가면서 원주민들이 주변 지역에서 전세를 찾아 나서다 보니 값은 치솟고, 물건은 구하기 어렵게 됐다"라며 "지방의 부모에게 기대거나 주머니가 얇은 학생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울러 "신축 원룸의 증가도 방세 상승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흑석뉴타운이 들어서는 중앙대 인근(동작구 흑석동)은 지난해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 하던 자취방이 최근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 안팎으로 올랐다. 보증금 500만~700만원에 월세 30만~40만원이던 원룸형 자취방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50만원 이상으로 뛰었다.
왕십리뉴타운 주변인 성동구 행당동과 상ㆍ하왕십리동 주변 주택가 중개업소에도 싼 방을 찾는 대학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 M공인 관계자는 "보증금만 1년 새 2배로 뛴 자취방이 많아지면서 아예 학교와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구하거나, 불편하더라도 친구와 합쳐 방값을 절반씩 부담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발품을 팔아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학부모와 학생들의 하소연이다. 예비신입생 이재연(19)씨는 "학교 부근 원룸을 구하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왔는데 보증금 500만원에 매달 40만원 이상을 달라고 해 난감하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학부모 최기홍(48)씨는 "아들 둘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녀 작은 아파트라도 얻어줄까 했는데, 돈도 돈이지만 집이 없더라"고 푸념했다. 재학생 최모(23)씨는 "전세 4,000만원 짜리 원룸에 살고 있었는데 주인이 4,50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했다"며 "쫓겨나면 그 가격에 집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아서 500만원을 얹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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