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은행이 똑 같은 지배구조를 가지라는 얘기네요."
지난 25일 은행연합회가 내놓은(보다 정확하게는 정부가 만든) '사외이사 모범규준안'에 대해 한 금융권 인사는 이렇게 평했다.
확실히 지금의 은행 지배구조가, 그 중에서도 사외이사 제도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견제하지 못하는 '거수기' 현상, 아예 사외이사 자체가 '권력화'되는 현상, 사외이사 자리를 개인적 이해관계에 활용하는 '사유화'현상 등.
문제는 이에 대한 정부의 접근방식이다. 정부는 사외이사 제도에 대한 '정답'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사외이사에 관한 모든 것, 하나하나까지 '모범답안'을 만들게 됐다. '사외이사 임기는 2년으로 하라'로는 도저히 안되겠는지 '2년 이후엔 1년씩 세 번까지만 더 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들었고, 그래도 못미더웠는지 '매년 20%씩은 교체하라'는 조항까지 신설했다. 사외이사의 중립성과 전문성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출신직업까지 명시했다. 이 밖에도 시시콜콜한 것까지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것은 한두 개가 아니다.
모범규준이 시행되면, 우리나라 시중은행과 지주회사는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모두 똑 같은 지배구조를 갖게 된다. 한꺼번에 찍어낸 '붕어빵'같은 사외이사 제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게 과연 올바른 모습일까. 과연 이 세상 기업지배구조에 '하나의 정답'이 존재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모범답안이란 있을 수 없다. 이익을 많이 내는 지배구조, 그러면서도 투명한 지배구조가 최선의 지배구조"라고 입을 모은다.
CEO가 이사회의장을 겸임하든 말든, 사외이사를 1년을 시키든 10년을 시키든, 그건 정부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지배구조는 기업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위법성 여부와 결과에 대한 책임만 따지면 된다. 금융기관을 못미더워하고, 그래서 시시콜콜 가이드해 주려고 할 때 관치는 생겨나는 법이다.
손재언 경제부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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