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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불안이 엄습하는 사회

입력
2010.01.2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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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나이 50의 보험회사 고참 부장이었는데 그만두게 됐다는 얘기였다. 순간 그 친구의 대학생, 고교생 자녀가 떠올랐다. 이런 심정을 아는 듯 그는 큰 목소리로 "걱정 마라, 입에 풀칠 못하겠냐"고 말했다. 그러나 호언 뒤편에 드리운 불안감은 전화를 끊을 때 나지막이 들린 한숨 소리를 통해 절절하게 다가왔다.

우리 모두 안고 사는 실업문제

어제는 조카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름 괜찮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니는 사회초년생이다. 상의할 게 있다는 조카의 요청에는 최근 어려워진 회사사정, 그로 인한 불안감이 들어 있었다.

얼마 전 통계청이 지난해 실업자가 88만 명으로, 통계를 산정한 1999년 이래 최대라고 발표했을 때 느꼈던 관념적인 우려가 주변과 가족의 현실적 문제로 다가온 것이다. 하긴 실질 실업자가 400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그런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생각도 든다. 4인 가족으로 치면 1,600만 명이 자신이나 가족의 실업문제를 안고 살고 있는 셈이다.

정부도 그 심각성을 인식, 대통령 주재 고용전략회의를 가동했다. 민주당도 김진표 최고위원이 24일 기자회견에서 "대졸자 2명 중 1명이 곧바로 백수로 전락한다"며 일자리추경을 촉구하는 등 본격적으로 쟁점화에 나서고 있다. 아마도 실업문제가 6ㆍ2 지방선거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문제는 처방이다. 고용전략회의는 다양한 추진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재정지원 일자리 창출, 근로유인형 복지제도 재설계, 우수기능인력 창업지원, 서비스산업 수출 지원 확충 등등.

그러나 이런 추진과제가 어제 오늘 나온 것이 아니어서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빨리 금융위기를 극복했다는 평을 받았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수조 원의 이익을 냈지만 실업자는 오히려 늘었다. 더욱이 실업자들의 탈출구였던 자영업도 지난해 무려 26만 명이나 감소, 1999년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이러니 취직 불안, 실업 공포, 노후 걱정이 범람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일보가 기획, 출판한 <시대정신 대논쟁> 을 들춰봤다. 당시 토론자로 나온 박재완, 박형준, 이주호, 나성린 등 이명박 후보의 재사들은 지금 청와대, 정부, 국회에서 핵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논쟁에서 압도적이었고 집권하면 다 잘 될 것이라는 자신감은 가히 신념에 가까웠다. 논리의 골자는 시장주의와 낙수(落水)이론이었다. 대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정부 개입 축소, 감세, 규제완화 등을 해주면 성장이 이뤄질 것이고, 거기서 물이 넘쳐 흘러 서민도 잘 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시장과 경쟁에 맡기자는 이론은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그 타당성을 잃고 있고 낙수이론은 일부 대기업의 최대 이익에도 불구하고 협력업체들의 희생 감수, 역대 최대 실업자라는 현실 앞에 빛이 바래고 있다. 규제완화도 탐욕적인 국제금융자본의 폐해가 나타나면서 절대적 가치의 위상에서 내려오게 됐다. 실제 오바마 미 대통령이 금융개혁조치를 내놓고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동조하는 데서도 시장절대주의, 무조건적 규제완화가 최선이 아님이 입증되고 있다.

패러다임 전환 진지한 고민을

이제 우리도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시대정신 대논쟁에서 상대 토론자들의 주장, 즉 정부가 사회의 약한 부분을 감싸주고 시장의 탐욕을 적절하게 제어하는 '선한' 개입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자는 논리를 꼼꼼히 따져보자는 것이다.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 고양이면 어떤가, 우리 사회를 엄습하는 불안을 해소하고 진짜 발전을 이룰 수만 있다면 말이다. 사족이지만 자기 사람 심기나 줄 세우기 의도가 있는 정부 개입은 물론 논외다.

이영성 편집국 부국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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