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안무가 정영두(36)씨의 현대무용 '달지 않은 공기'는 남녀의 애끊는 사랑을 진솔하게 그려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어렵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는 무용 공연에서 흔치않은 반응이었다.
집요하게 몸을 탐구하는 것으로 국내외에서 잘 알려진 그가 2년 만의 신작 '제7의 인간'을 3월 10, 11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린다. 영국 작가 존 버거와 사진작가 쟝 모르가 유럽 이민노동자에 관해 쓴 동명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현대무용이다.
정씨는 "외적인 소재는 이주노동자이지만 고향과 가족, 직장, 나라에서 떠날 것을 강요당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루 표현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이주는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모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고 머문다"고 덧붙였다.
주제의식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그는 선곡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다문화적 경험을 음악에 새긴 말러의 교향곡 1번 3악장과, 보헤미안의 애수가 살아있는 드보르작의 피아노 3중주 '둠키', 스탈린 시대를 살았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8번 3악장 등이다.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폴란드 작곡가 헨릭 고레츠키와 고음악의 거장 조르디 사발의 곡도 염두에 두었다.
안무는 더 섬세하고 지난한 작업을 거쳤다. 60%가량 완성된 작품은, 상징적이되 어둡고 음울했다. 14명의 무용수가 새 옷으로 갈아입는 과정을 그린 첫 장면은 타인의 삶을 대신 보여주는 무용수의 입장을 철학적으로 그려냈고, 영정 사진을 든 마임으로 용산참사 희생자를 애도한 장면은 직설적이다. 정씨는 그러나 "모든 동작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전 정보 없이도 동작 자체를 아름답게 느낄 수 있도록 안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용평론가 이종호씨는 정씨의 작품을 두고 "전개 구조와 동작 하나하나가 논리를 지닌다. 특히 사회문제와 인간관계를 파고드는 주제의식이 뚜렷하다"고 평한다. 올 봄, 그가 구현한 몸짓에 관객은 다시 전율하게 될까. (02)2005-0114
■ 토론… 답사… "제작과정 흥미롭네"
20일 LG아트센터 연습실을 찾았을 때, 정영두씨와 무용수들은 <경제저격수의 고백> (황금가지 발행)이란 책을 놓고 열띤 토론 중이었다. "부끄러운 말인데… 경제서적을 처음 읽어서 좀 낯설어요."(곽고은) "나에겐 크게 와 닿는데. 나는 패스트푸드도 안 먹거든."(권영호) 경제저격수의>
매주 수요일 열리는 이 독서토론회처럼 '제7의 인간'에는 이주민의 정서를 체화하기 위한 일련의 제작 과정이 숨겨져 있다. 용산참사 현장을 답사하고, 이주노동자 도우미 최준기 신부를 만난 것도 그 일부. 최근에는 원시적 이주를 보여주는 철새 도래지도 탐방했다. 정씨는 "0.1%라도 영감을 얻을 수 있다면 뭐든 한다"고 했다.
많은 작품이 물론 답사와 고증을 거쳐 제작된다. 그러나 공연만 해서는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전 구성원이 3개월 동안 한 작품에만 몰두하는 이번 작품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무용수 권영호(32)씨는 "출연작 중 고민의 과정을 거친 작품과 아닌 것이 2:8의 비율을 이룬다"고 털어놨다.
'제7의 인간'은 LG아트센터 10주년 기획공연으로 선정되면서 제작비 전액을 극장에서 지원받았기에 이 같은 과정이 가능했다. 평론가 이종호씨는 "좋은 공연은 공연장 혹은 재단이 스폰서와 제작자 역할을 모두 해줘야 탄생할 수 있다"며 "아직도 기획공연을 단순히 무대 제공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고 말했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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