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당시 81세인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을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ERAB) 의장에 지명하면서 "독립적이고 확고한 판단을 가진 고집 센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이 광경은 별로 주목 받지 못했다. 대선 기간 중 오바마의 경제교사를 지냈고 새 정부의 재무장관 후보로 유력시되던 볼커에게 기능이 불분명한 신설 조직을 맡긴 것은 예우로나 역할로나 의외였기 때문이다. 가이트너 재무장관과 로런스 서머스 국가경제위원장 등 친월가 인맥에 밀려 '뒷방 늙은이'신세가 됐다는 입방아도 나왔다.
▦ 지난 주말 오바마 대통령은 월가에 사실상 전쟁을 선포하는 고강도 금융개혁방안을 발표하면서 "이번 정책은 내 뒤에 선 키 큰 분(this tall guy)의 이름을 따 '볼커 룰'로 명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들 역시 오바마 뒤편에 선 2m 거구의 상징성에 주목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이번 조치는 볼커가 돌아온 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며 "세상이 다 바뀌어도 볼커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고 평가한 것은 대표적이다. 오바마가 그를 ERAB 의장에 임명할 때 높이 산 소신과 판단이 1년여 만에 빛을 발한 셈이다.
▦ 카터 행정부와 레이건 행정부에 걸쳐 9년(1979~1987)간 Fed 의장을 지내며 '인플레 파이터'라는 별명을 얻은 그의 고집은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그는 물가를 잡아 통화가치를 안정시키는 것이 중앙은행의 근본 책무라고 판단, 대규모 실업과 경기침체를 불사하면서 금리를 20%까지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고금리에 격분한 농민ㆍ노동계층의 과격시위가 빈발했고 백악관 및 의회와의 마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Fed의 전설로 통하는 그의 고집은 결국 15%에 육박하던 인플레를 3%대로 진정시켰고 이것은 90년대 호황의 초석이 됐다.
▦ 오바마가 금융규제론자인 볼커의 컴백을 통해 월가의 '살찐 고양이'들에게 전쟁을 선포했지만 승패는 안개 속이다. '오 백워드(backward)'라고 비아냥대는 은행권과 보수세력의 반발이 거세 의회 통과가 불투명한 데다, EU 등과의 이해조율 작업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저항 세력이 싸움을 원하면 기꺼이 싸울 것"이라는 오바마의 전의 역시 대단하다. 그 옆에 '뱅크 파이터'로 변신한 볼커가 있어 더욱 힘이 느껴진다. 이 전쟁의 쟁점은 올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 의제와도 직결되니 추이를 잘 지켜볼 일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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