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철 글ㆍ그림/사계절 발행ㆍ48쪽ㆍ1만8,500원
'엄펑소니'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엄펑소니는 '의뭉스럽게 남을 속이거나 골리는 짓'을 뜻하는 순 우리말. 모양새부터 범상치 않은 이 그림책에 알프레드 히치콕과 에디슨의 축음기, 미국 엠파이어 빌딩, 대동여지도, 진시황릉에서 발견된 병마토우 등이 오로지 엄펑소니를 설명하기 위해 총출동했다.
그렇게 완성된 익살스러운 그림은 조선 후기 민화인 문자도(文字圖)를 닮았다. 책은 인간의 도리인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에 해당하는 각각의 문자도를 패러디한 그림을 싣는데, 어린이책이지만 어른이 보기에도 무척 참신하고 신랄하다. 가령 의(義)를 그릴 땐 정의의 여신상 얼굴에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행복한 눈물'(삼성 특검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그 그림) 속 여인을 붙여놓았다.
작가 박연철(40)씨는 "글자의 의미를 우화처럼 그려낸 문자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며 "그 안에 담긴 도덕적 메시지를 비틀어 아이들에게 '반어'의 개념을 알려주려 했다"고 말했다. 히치콕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그가 영화에 '맥거핀'(독자의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눈속임 장치)을 즐겨 사용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맥거핀과 엄펑소니가 통한다고 보았다.
박씨가 만든 이미지들에서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엿보이는 초현실주의, 앤디 워홀의 팝아트 기법이 살아 숨쉰다. 3년 동안 이 책을 만드는 데 매달렸다는 그는 책 곳곳에 색다른 재미도 숨겨두었다. 거짓말이 늘어갈수록 길어지는 피노키오의 코를 찾아보자. 피노키오의 얼굴은 박씨의 일곱 살 때 모습이라고 한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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