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연자원 많은 나라가 공급량 조절 '무기화'
Q. 글로벌 경제위기가 차츰 잦아들면서 국제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이런 원자재가 상승은 경기가 살아나면서 전반적인 수요가 늘어나는 탓도 있지만, 종종 원자재가 많이 나는 나라들이 인위적으로 공급을 조절한 결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를 흔히 '자원민족주의'라고 부르는데요. 우리나라 같은 자원부족 국가는 자원민족주의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곤 합니다. 오늘은 자원민족주의를 둘러싼 궁금증을 살펴 보겠습니다.
A. 자원민족주의가 뭔가요?
전통적인 의미의 자원민족주의는 상대적으로 자원이 풍부한 저개발국가가 자본과 기술이 풍부한 선진국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자원을 전략적 무기로 이용하던 기조를 말합니다.
당초 원유를 중심으로 중남미에서 대두된 자원민족주의는 1960년대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과 같은 카르텔로 확대되었습니다.
과거 1ㆍ2차 석유파동은 OPEC을 중심으로 한 자원민족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73년 아랍국들과 이스라엘간 전쟁에서 서방이 이스라엘의 편을 들자, 이에 아랍은 서방으로 원유 수출을 금지하거나 축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1차 석유파동의 원인이 됐죠.
또 혁명으로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몰아낸 이란은 미국에 대한 원유 수출 금지 조치를 내렸고 이로 인해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2차 석유파동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후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원유소비 감소로 자원민족주의는 차츰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자원민족주의는 성격이 좀 다른가요?
예전 자원민족주의가 선진국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위해 자원을 무기화한 것이라면, 최근 들어서는 국가의 경제적 이익을 축적하기 위해 자원을 무기화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신 자원민족주의'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신 자원민족주의는 자원의 종류에 따라 원유 자원민족주의, 원자재 자원민족주의, 곡물 자원민족주의로 나눌 수 있는데요. 우선 원유 자원민족주의는 남미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원유의 국유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03년 러시아는 석유산업 국유화를 추진했고, 2004년 아르헨티나는 국영에너지회사를 설립해 석유의 탐사 및 정제를 총괄하는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또 2006년 볼리비아는 외국 석유회사들의 석유 소유권을 180일 이내에 볼리비아 국영석유회사에 이전하도록 했고, 에콰도르는 석유회사들에게 50%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을 의회에서 가결했습니다.
원자재 자원민족주의는 주로 철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철광석, 선철, 고철 등의 철강 원재료에 대해 가공무역 수출을 금지했고, 철광석 고철 등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했습니다. 브라질은 한국 포스코 등에 공급하는 철광석 가격을 2008년 4월부터 65% 인상했습니다.
곡물 자원민족주의는 곡물 시장의 초과 수요로 곡물 가격이 상승하자, 식량을 전략적 무기로 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 식량 수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같은 식량 소비대국들 역시 수출을 제한하는 등 식량에 대한 민족주의가 확산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왜 자원민족주의에 민감한 거죠?
자원민족주의가 확산되면 해당 자원의 가격이 급등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자원 빈국에 속해 자원 자급률(풀어읽는 키워드 참조)이 낮기 때문에 자원 가격이 급등하면 수입액이 크게 늘면서 무역수지가 악화됩니다. 또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내수를 위축시킬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자원은 각국 국민의 생존권과 직결됩니다. 때문에 자원민족주의로 인해 가난한 나라들이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자원으로 인한 전쟁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특히 곡물 자원민족주의로 인해 곡물 가격이 급등할 경우,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가난한 나라들은 중산층까지 기아 계층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 같은 사태가 지속될 경우 폭동으로 이어지고, 결국 인접 국가간 식량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베넹과 니제르 같은 아프리카 빈국들, 방글라데시와 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경우 식량이 소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식량부족은 심각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 이변으로 작황이 부진하고, 바이오 에너지 개발로 식용 곡물 재배면적이 감소함에 따라 곡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 최근 들어 지진, 홍수, 태풍 등 자연재해의 피해 규모마저 커지고 있어 일부 지역은 식량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신 자원민족聆풔?국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자원 전쟁을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도 자원민족주의가 다시 등장할 수 있나요?
최근 들어 유가, 원자재 가격, 곡물 가격 등이 급등하고 있어 2010년 신 자원민족주의의 재등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9년 들어 유가, 산업원자재 가격, 식량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가는 2008년 12월 배럴당 40.5 달러로 4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09년 11월에는 배럴당 77.7달러로 1년 만에 37.2달러 급등했습니다. 산업원자재가격지수는 2009년 1월 이후, 식량가격지수는 2009년 4월 이후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는 세계적인 경기 회복이 가시화됨에 따라 원유, 원자재, 곡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이들 자원의 가격 역시 상승할 전망입니다. 이처럼 자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가격이 상승하게 되면, 이는 자원 보유국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 때문에, 신 자원민족주의는 충분히 다시 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요?
정부는 자원의 안정적 공급뿐 아니라 자원 소비의 효율성도 극대화함으로써 자원의 안정적 수급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해외 자원을 적극 개발하고, 화석 연료 이외의 대체 에너지 개발을 위한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자원의 공급처 역시 다양화해야 합니다.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는데 있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관련 시설을 도입하거나 기술을 개발하는 노력에 대해서는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합니다.
신 자원민족주의가 확산될 경우, 자원가격 상승으로 물가 역시 올라 가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비자들도 자원 수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물 절약, 전기 절약 등과 같은 자원 절약을 생활화하고, 음식물 쓰레기, 생활 쓰레기 등을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들에 대한 재사용 역시 확대해야 합니다. 결국 자원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것만이 신 자원민족주의로 발생하는 위협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풀어읽는 키워드
자급률이란?
일반적으로 자급률이란 국내에서 생산된 양을 국내에서 소비된 양으로 나눈 개념을 의미합니다. 특정 품목에 대한 자급률이 100 이상이라는 것은 해당 품목이 남아 수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급률이 100보다 작으면 해당 품목을 수입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현대경제연구원 임상수 연구위원
■ 우리나라의 자원 자급 상황
우리나라는 자원 확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펼치고 있을까요.
최근 지식경제부는 정부와 민간기업이 올해 해외자원 개발에 사상 최대 규모인 120억달러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일례로 석유공사는 올해 해외 석유기업 인수에 65억달러 이상, 가스공사는 이라크 유전개발 등에 10억달러 가량을 투자할 방침이라는 거죠. 민간기업들도 지난해 11억달러보다 크게 늘어난 39억달러를 올해 투자할 계획이랍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자원관련 공기업의 자본금을 늘리고 기업들에게는 대출이나 세제 혜택도 주기로 했습니다.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은 우선 우리나라의 자원 자급률이 너무 낮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원자재인 석유와 가스의 자주개발률은 지난해말 현재 8.1%에 머물고 있습니다. 자주개발률이란 정부와 민간업체가 국내외에서 확보한 석유ㆍ가스 생산량을 국내 소비량으로 나눈 비율로 에너지 자립도를 뜻하죠.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95%로 우리 못지 않게 높은 편인 프랑스의 자주개발률이 97%(2006년 기준)이고,이탈리아(해외의존도 86%)가 48%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올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자주개발률을 10% 이상으로 높인다는 계획입니다.
자원을 확보하려면 돈이 필수적이겠죠. 실제 이웃나라 중국은 2조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어마어마한 돈을 자원 확보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2006년 이후 3년 동안 에너지 분야 인수ㆍ합병(M&A) 용도로 캐나다에 77억달러,호주에 20억달러,중남미에 22억달러 등을 투자한 데 반해, 한국은 캐나다에 3억달러,호주에 2억달러 정도를 투자한 게 고작이었습니다.
실제 지난해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자원확보 경쟁에서 자금력에 밀려 번번이 고배를 마시기도 했는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 6월 스위스 석유 ㆍ가스회사인 아닥스 인수전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석유공사는 국민연금과 함께 인수금액으로 69억달러를 써냈지만 막판에 72억달러를 제시한 중국석유회사 시노펙에 밀려 고개를 떨궜습니다. 작년 5월 호주 광물업체인 팬오스트사 지분 인수전에서도 중국 기업이 한국(5,000만달러)의 3배 가까운 1억4,200만달러를 제시해 승부를 결정지었구요.
정부는 이 밖에도 크롬, 망간, 리튬, 희토류(稀土類) 텅스텐 등 최근 수입이 급증하고 있는 희귀금속에 대한 해외 자원개발도 확대하고 리튬 등 6개 광물을 '준 전략광물'로 지정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발 여건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칠레의 리튬광을 비롯해 중남미 지역에서 리튬광 개발 프로젝트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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