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0년 된 노하우' 배울 유일한 곳은 현장의 선배 옆자리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大阪)시 덴노지(天王寺)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절 시텐노지(四天王寺)가 593년 이후 1,400여년간 이곳에 터를 잡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시텐노지 바로 앞에는 이 절을 짓고 유지 및 보수를 책임져온 일본 전통건축회사 곤고구미(金剛組)의 본사도 자리잡고 있다.
곤고구미는 올해로 1,432년째 명맥을 잇고 있는 '세계 최장수 기업'이다. 지난달 18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곤고구미의 본사 한 회의실에 들어서자 쇼토쿠(聖德)태자의 위패가 모셔있는 불단이 눈에 띈다. 곤고구미는 578년 일본 쇼토쿠 태자의 초청을 받아 백제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곤고 시게미츠(金剛重光ㆍ한국명 유중광)를 비롯한 백제 목수 3명이 세운 회사. 그로부터 40대에 걸쳐 신사, 사찰, 궁궐 등 전통 목조건축물을 짓고, 보수하는 본업을 충실히 지켜오고 있다.
본사에서 차로 40여분 거리, 오사카시 남쪽과 경계를 맞닿은 사카이(堺)시에 있는 간사이(關西)가공센터는 곤고구미 전속 미야다이쿠(宮大工ㆍ전통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목수)들의 일터다. 미야다이쿠 경력 50년의 가토 히로후미(加藤博文ㆍ66) 감독은 긴 목재를 붙들고 이음새에 맞출 구멍을 파는 데 몰입한 한 젊은 목수를 가리키며 "잔심부름하던 단계를 거쳐 이제 나무를 만지기 시작한 젊은이"라며 "일반 목수와는 달리 전통 건축을 하는 목수는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분위기여서, 미야다이쿠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젊은이들도 많다"고 자랑했다.
곤고구미도 1,400여년을 버티면서 역사 속에 사라질뻔한 고난의 시기도 겪었다. 19세기 근대화이후 사찰 건축이 감소하고 철근콘크리트건축 등 새로운 공법의 등장으로, 사운은 기울어 갔다. 40대 당주 곤고 마사카즈(金剛正和) 전 사장은 일반가옥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경영난을 타개하려고 시도했지만, 2006년 파산에 몰리면서 중견건설사 다카마쓰(高松)건설에 편입돼 간신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곤고가(家)가 경영 핵심 라인에서 손을 떼며 가족기업으로서의 맥은 끊겼지만, '전통의 기술을 후세에 전한다는 사명감'만큼은 깊이 새기고 있다.
"완성도 높은 전통 목조건축 기술을 대대로 전수하고 지켜온 미야다이쿠들이 있었기에 오랜 시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미야다이쿠와 곤고구미는 일심동체라고 할 수 있어요." 85세의 고령에도 상담역으로 경영에 조력하고 있는 39대 당주 곤고 도시다카(金剛利隆)옹은 전속 장인 목수들을 곤고구미의 자랑거리로 강조했다.
현재 곤고구미에는 120여명의 전속 목수들이 8개조(組)로 나뉘어 소속돼 있다. 그 중 6개는 오사카를 연고지로, 2개는 도쿄(東京)를 중심으로 활동 중인데, 그 하나하나가 곤고구미의 자회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독립적으로 건축을 하고 대를 이을 목수를 키우고 기술을 이어 나간다. 창립 초기의 목수단체로서의 성격이 지금도 남아있는 셈이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또 그 아들로 대를 이어 내려온, 전통에 충실한 공법이야 말로 곤고구미가 세계 최장수 기업으로서의 명예를 굳건히 지켜갈 수 있는 힘의 원천. 곤고구미가 지은 고베(神戶)시 가이코인(戒光院) 대웅전이 10만채의 건물이 무너진 1995년 한신대지진에서도 전혀 손상없이 건재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우에마쓰 료이치(植松襄一) 곤고구미 오사카본점장은 "독특한 기술공법은 다른 회사들도 갖고 있지만, 기술 수준과 완성도에서 곤고구미를 뛰어넘을 곳은 없다"며 "1,400년 넘게 선배의 기술을 후배가 잘 배워 익혀 축적해왔기 때문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완성도에 이른 것"이라고 했다.
기술 교육은 문서로 된 매뉴얼이나 전문 교육기관 하나 없이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현장에서 도제식으로 이뤄진다. 곤고구미의 미야다이쿠들은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후배가 선배의 기술을 '훔친다'고 했다. 우에마쓰 본점장은 "말로 배우면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에, 몸으로 터득하고 익혀서 쌓아가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진지하고 빠르게 기술을 전수하는 방법"이라며 "전통 기법에다 스스로 익힌 새로운 기술을 쌓아나가는 데도 훨씬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전통의 기술에 새로운 기술을 쌓아 올리는 신구의 조화 속에 곤고구미의 미래가 있다는 얘기였다.
오사카=문향란기자 iami@hk.co.kr
■ '목수 3대' 가토 히로후미 감독 "아들이라고 더 봐주지 않아… 전통 목수는 선망의 대상"
"목재를 2~3번 더 깎고 시간과 정성을 들이면 건물에 더 오래 숨결이 살아남는다는 점이 미야다이쿠(宮大工)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죠."
곤고구미 간사이(關西)가공센터에서 만난 가토 히로후미(66) 감독은 이 회사의 전속 목수 중 경력과 실력에서 대표격으로 손꼽히는 장인. 고등학생이던 16세때 전통건축 목수일을 시작해 올해로 경력 50년에 이르렀다. 18년 전부터는 부친이 이끌던 가토조(組)를 물려받아 16명의 조원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가토조는 곤고구미가 보유한 8개 자회사 중 하나로, 선대 조상때부터 이어오는 이름이다.
가토 감독은 가업인 미야다이쿠 이외의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부친으로부터 그로, 또 아들로 대를 이어 3대째 곤고구미 전속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건축 현장을 따라다니며 살다 보니, 특별히 배우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전통 목조건축 기술을 보고 익히게 됐다"며 "장남으로 태어나서 가업을 잇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내 아들도 나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오사카가 연고지인 6개 곤고구미 건축조 가운데 4개가 이렇게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를 잇고 있다.
그도 아버지로부터 다른 목수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전통목재건축 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미야다이쿠 입문 뒤 첫 1,2년은 나무도 만져보지 못한다. 청소나 찻물 끓이기 같은 잔심부름을 하며 어깨너머로 선배들이 목재를 다루는 것을 보면서 기술을 배운다. 이후 이음새 구멍을 파는 것과 같은 초보적인 작업부터 시작해서 노력과 재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10년 정도는 지나야 목수다운 일을 잡게 된다.
가토 감독은 "일정한 경지까지는 윗사람의 방식대로 그대로 따라하는 게 최고의 기술을 구현하는 것이지만, 나머지는 스스로 채워나가는 게 미야다이쿠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아들이라고 해서 더 친절하게 수준 높은 기술을 가르쳐주는 경우도 없다.
목수 중에서도 미야다이쿠는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 "정부가 인정한 몇몇 장인들만 문화재 보수를 할 수 있는 등 전통을 지키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미야다이쿠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이라고 전했다. 그는 "일반 건물과 달리 전통 건물은 200~300년 오랜 세월 유지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미야다이쿠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오사카=문향란기자
■ 일본은 장수기업의 천국
일본은 전세계 '장수기업'의 메카다. 곤고구미를 비롯해 1,000년 넘는 사력(社歷)을 지닌 초장수기업은 7곳, 100년 이상된 기업은 약 5만개나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세계 어느 나라도 이처럼 기업들이 장수하는 기록을 갖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창업 200년 이상 된 기업에 대해 국제 비교를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기준 200년 이상 된 기업은 전세계 5,586개가 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3,146개가 일본에 몰려 있다. 그 뒤를 독일 837개, 네덜란드 222개, 프랑스 196개, 영국 186개 등 유럽 국가들이 잇고 있다. 건국 역사가 짧은 미국은 200년 기업이 14개에 불과했다.
일본의 1,000년 이상 된 초장수 기업들은 대부분 오랜 장인의 기술과 가업으로 계승되는 전통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업을 하고 있다. 578년 창업한 곤고구미는 전통사찰 건축을 전문으로 하고, 각각 705년과 718년에 문을 연 게이운칸(慶雲館)과 호시(法師)는 온천여관, 그 뒤를 잇는 도라야쿠로가와(虎屋黑川ㆍ793년 창업)는 전통과자 제조업체이다.
일본에서 100년 이상 유지된 장수기업은 ▦식품, 요리, 술, 의약품 등의 생활밀착형 기업 ▦오래 축적된 장인의 기술이 필요한 전통문화와 밀접한 제품을 생산하는 전통승계 가업형 기업 ▦여관 등과 같이 가족 단위로 경영할 수 있는 패밀리형 서비스기업이 대부분. 하지만 창업 이래 지켜온 고유기술을 적용해 첨단 소재ㆍ부품을 생산하는 소재기업으로 거듭난 경우도 많다.
문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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