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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해외석학 사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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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해외석학 사대주의?

입력
2010.01.2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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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파생상품인 '키코'소송 심리가 열린 21일 서울 지방법원 466호 공개법정 방청석은 대만원이었다. 이유는 '거물'증인 때문. 세계적 석학인 스티븐 로스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 교수가 피고(은행)측 증인으로 나온 것이다. 이날 방청석엔 소송 당사자들보다 로스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려는 학자와 금융계 인사 등이 더 많아 보였다.

피고측이 그를 증인으로 내세운 것은, 원고(키코 피해 중소기업)측에 대한 '맞불작전'차원이었다. 한달 전 원고측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엥글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를 증인으로 내세우자, 피고측도 '눈에는 눈'식으로 '석학에는 석학으로' 맞선 것이다.

해외 석학들이 국내 소송에 증인으로 나온 것은 보기 드문 일.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듯, 이들의 논리는 그다지 '석학'스럽지 못했다. 정곡을 찌르는 주장도 별로 없었다.

한달 전 증인석에 섰던 엥글 교수의 주장은 노벨상 수상자의 논리라고 하기엔 너무나 허점이 많았고, 심지어 반대심문 도중 "팀과 상의해 답변하겠다"고 말해 재판장으로부터 "증인의 생각을 말해보라"는 질책성 주문을 받기도 했다. 이날 로스 교수 역시 너무도 평범한, 그냥 실무자들도 할 수 있는 증언으로 일관했다. 심리를 지켜본 한 금융계 관계자는 "저런 얘기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 거물 증인이 판사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였고, 앞으로 판결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상대를 압도할 만한 논리나 주장은 없어 보였다. 피고나 원고도 이를 모를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불러온 이유는 '노벨상 수상자''세계적 석학'이란 증인의 이름값 덕을 보려함이었을 것이다.

이것도 소송전략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은행도 기업도 상처만 남은

키코 소송에서 '석학'들의 주머니만 두둑해지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기만 하다. 참고로 원고와 피고 측이 두 석학을 '모셔오기'위해 지급한 돈은 억(億) 단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진주 경제부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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