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흠(42ㆍ사진) 시인이 네 번째 시집 <귀가 서럽다> (창비 발행)를 펴냈다. 1994년 등단 이후 사회적ㆍ역사적 비판의식에서 서정성으로 점차 시적 무게중심을 옮겨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어머니, 가족, 고향, 자연, 연애 등 농밀한 서정의 세계를 전면에 펼친다. 귀가>
시집은 서정의 원천에 따라 4부로 나뉘었다. 시인은 그 중 제2부를 온전히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시(獻詩)로 썼다. 노모가 죽어가는 화분을 용케 살려내는 비결을 궁금해하던 시인은 '어머니의 손에는 내 손에 없는 귀가 수백 개/ 수천 개 열려 있'어 '그것들의 아픔에/ 가만 가만히' 다가서고 있음을 깨닫는다('어머니의 손바닥엔 천 개의 귀가 있다'에서). 남도 사투리가 흐벅진 시 '오래된 편지'엔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해외 근무 중인 장남에 대한 어머니의 애틋함이 묻어난다. '큰 악으야 여그도 이라고 더운디 노무 나라에서 얼매나 땀 흘림시롱 고상허냐? 저번참 핀지에 내 물팍 아푸냐고 물었는디 내 몸땡이는 암상토 안항께 꺽쩡얼 허들 말어라'
뭇생명을 연민하는 어머니는 이 시집에 자주 나오는 '검은 것'의 이미지와 통한다. 원색을 한데 섞으면 검정이 되듯, 시인에게 검은 것은 오래도록 세상의 낮은 곳에서 타인의 근심과 슬픔을 받아들인 존재의 다른 이름이다. 검정의 재발견이다. '고목나무 뿌리가 저렇게 검은 것도 돌이 되어 가라앉은 누군가의 속울음에 귀를 세웠기 때문입니다'('시간의 뿌리'에서). '착해서 가난해진 그 사람의 몸에서 나던 살냄새/ 바람이 여물 먹은 소처럼 순해진다/ 몸이 검다는 것은 울음이 많이 쌓였다는 것'('고매에 취하다'에서).
시인의 고향인 전남 장흥의 친지가 대거 등장하는 3부의 시에선 관능과 해학이 어우러진다. 황영감은 '박은 듯 안 박은 듯 망치를 살살 다뤄사제/ 실실 문지르대끼 땅을 달래감서 박어사/ 땅이 몸을 내주제'라며 말뚝 박는 법을 설파한다('황영감의 말뚝론'에서). 청상과부 하고댁은 비가 오는 날이면 논일을 멈추고 '저승살림 차린 영감/ 그렇게 일찌거니 딴살림 차렸냐'며 '어떨 땐 속곳까지 후줄근히 물범벅'이 된 채로'염병 씹벵/ 고두마리 씹벵/ 잠자리 눈꾸녁' 운운하는 야릇한 '욕 노래'를 퍼붓는다('하고댁'에서).
4부는 사랑의 절창이다. '삶은 빨래 너는데/ 치아 고른 당신의 미소 같은/ 해살 오셨다/ 감잎처럼 순한 귀를 가진/ 당신 생각에/ 내 마음에/ 연둣물이 들었다'('행복'). '천년 동안의 사랑'은 재회한 연인이 운주사에서 보내는 하룻밤을 그린, 가슴 저릿한 장시(長詩)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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