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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무섭다! 휴대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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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무섭다! 휴대전화

입력
2010.01.2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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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말썽부리던 휴대전화를 새로 교환했다. 새 휴대전화는 요즘 유행하는 '터치폰'인데 여간 민감한 친구가 아니다. 예전 전화기처럼 얌전하게 길들이려면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기계를 바꾸면서 사용하던 전화기에 저장돼 있던 전화번호를 새 전화기에 옮기는데, 어이쿠! 무려 873명의 번호가 들어 있다.

그중에는 무용지물이 된 번호도 있고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 번호도 있는데, 그래도 내가 그렇게 많은 번호를 기계 속에 저장하고 있었던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번호 중 내가 완전하게 기억하는 번호는 집과 관련된 2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고 동생네 집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어 휴대전화를 들고 다녔다. 편리함이 사람을 쉽게,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바보로 만든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리거나, 고장으로 저장된 번호를 모두 날려버리고 패닉 상태에 빠진 사람을 봤다. 휴대전화가 만든 현대판 치매환자 같았다. 사람의 뇌가 디지털에 무조건적으로 의지하다가는 '디지털 치매'란 새로운 유행병이 생길 것이다. 디지털 치매라? 적절한 말이다 싶어 사전을 찾아보니 '휴대전화와 같은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라는 뜻의 신조어가 벌써 사전에 올라 있다. 휴대전화! 너, 참 무서운 이름이다.

시인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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