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devastating)이다."
미 대법원이 21일 기업의 특정 후보 지지ㆍ 비방 광고를 허용한 판결에 대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반응이다.
그는 판결 직후 "서민들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워싱턴에서 매일 영향력을 행사하는 석유 대기업과 월가의 은행들, 건강보험 회사에 승리를 안겨준 판결"이라고 공격한 데 이어 23일에는 한발 더 나아갔다.
"우리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타격"이라고 규정한 뒤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고 선언, 사법부 판결에 대한 전투의지까지 드러냈다. 오바마가 이번 판결의 파장에 대해 얼마나 고심하는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헌법을 전공한 시카고대 법학 교수 출신의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누구보다도 대법원 판결에 대항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번 판결이 5대 4로 결론이 내려졌듯 종신 대법관 제도하에서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짜여진 보수 우세의 대법원 구도는 대통령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 하지만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내려진 이번 판결은 그냥 방치하기에는 너무 치명적이다.
최근 치러진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보궐 선거의 패배가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승리 가능성을 '사전 경고'한 것이라면, 이번 판결은 공화당 에 선거'실탄'을 무한대로 안겨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판결로 월가나 석유 대기업, 건강보험 회사에 맞서는 어떤 의원도 선거 때 융단폭격을 맞을 것"이라며 "특정 로비스트들에게 수백만 달러를 쓸 수 있는 수단을 안겨준 파괴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11월 중간 선거는 물론 자신의 개혁 아젠다인 건강보험 개혁이나 월가 개혁, 기후변화 입법 등이 모두 줄줄이 침몰될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어떤 식으로든 강력한 대응카드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우선적으로 '초당적이고 강력한' 보안 입법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행정부와 민주당은 2주안에 ▦회사가 정치광고를 하기 전 대주주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광고를 내는 회사 경영층의 이름이 광고에 명시되도록 하고 ▦구제금융을 받은 기업의 정치 광고를 제한토록 하며 ▦정치 광고에 돈을 쓰는 기업들에 대한 각종 혜택을 줄이는 방안 등을 내놓을 예정이다. 당장 11월 중간 선거에서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큰 민주당은 적극적이다.
하지만 공화당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공화당 상원 전국위원회 의장 존 코닌(텍사스주)의원은 "대법원이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지키는 판결을 내린대 대해 매우 기쁘다"며 "미국 민주주의를 강화시키는 판결"이라고 추켜세웠다.
언론의 반응도 회의적이다. 뉴욕타임스는 24일 "오바마 행정부가 이번 판결에 대항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진단했다. 결국 오바마의 전투력은 선거를 앞둔 의회에서의 힘겨운 보안 입법에 모아질 전망이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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