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정오 서울 중구 소공동주민센터. 민원서류를 발급받으려는 길고 긴 줄이 출입문 밖으로까지 이어졌다. 무인발급기 앞도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좁은 공간에 사람이 많은 탓인지 귀까지 멍멍했다. '딩동딩동' 하며 차례를 알리는 전자음이 요란하고 민원인을 부르는 직원들의 목소리도 뒤섞였다. "서류 한 장 발급 받는데 30분이나 기다렸어. 동네 시장이 따로 없구먼." 한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갔다.
99%가 다른 지역 민원인
소공동주민센터는 관내 인구가 고작 1,000여명으로 서울에서 가장 적은 인구가 살지만 언제나 민원인들로 북적댄다. 행정전산화로 민원서류를 관할 동사무소뿐 아니라 전국 어디서든 발급받을 수 있게 되면서 직원들은 수년 전부터 '일복'이 터졌다. 연말정산 서류를 발급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이맘때면 동사무소는 '전쟁터'로 변한다. 인감, 주민등록등ㆍ초본, 가족관계등록부 등 창구마다 늘어선 줄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주민등록등ㆍ초본 등 6개 서류는 전자정부 사이트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다고 안내하지만 민원인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점심시간을 전후한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하루의 절정이다. 북창동길에 자리잡은 소공동주민센터는 서울시청과 삼성그룹, 롯데백화점 등 수십 개의 대형빌딩에 둘러싸여 있어 회사원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린다. 특히 채권ㆍ채무 업무에 관여하는 은행과 법률회사 직원들은 한 번에 수십 통씩 서류를 떼가 눈총을 사기도 한다. 원성이 잦아지자 주민센터는 한 번에 발급 받을 수 있는 서류를 20통으로 제한하기까지 했다.
교통이 편리한 것도 사람들을 몰려드는 요인이다. 박청하 계장은 "주민센터 이용자의 99% 이상이 소공동 주민이 아니다. 서울뿐 아니라 경기, 인천지역 사람들까지 여기서 민원서류를 떼간다"고 말했다. 민원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자 4년 전에는 주민센터 최초로 번호표 발급기를 설치했다. 그나마 인근에 있던 삼성그룹 본사가 이전하면서 한숨 덜었다고 한다.
하루에 4,000건 서류발급
이 곳에서 하루 평균 발급하는 민원서류는 상주인구의 4배인 4,000여건. 주민등록 등ㆍ초본만 1,600건을 출력하고 가족관계등록부 750건, 인감증명도 560건을 발급한다. 하지만 직원은 16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민원업무 담당은 대여섯 명이 전담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공동주민센터는 '유배지'로 비유될 정도로 기피부서가 돼버렸다.
성질 급한 민원인들 때문에 병까지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직원들의 하소연이 이어진다. "화장실을 제때 못 가 방광염에 걸린 직원도 있었어요." "점심요? 10분 만에 먹고 와야죠. 아예 거르는 적도 있고요." 김수지씨는 "컴퓨터 자판을 하도 많이 두드려 어깨가 아프고 눈도 피로하다. 최근에는 목도 뻣뻣해져 안 돌아간다"고 말했다.
소공동을 품고 있는 서울 중구의 상주인구는 13만여명으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적다. 하지만 중구 관내의 유동인구는 소공동 일대가 하루에 50만~70만명에 이르는 등 400만명으로 추정된다. 상주인구는 적지만 유동인구는 많은 탓에 소공동이나 명동, 을지로 주민센터 등에서는 낮 시간에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몰려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기 일쑤다. 행정인력을 늘리고 싶지만 상주인구 기준으로 인력배정을 해야 한다는 정부 규정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구청 관계자는 "유동인구를 감안한 행정인력 배치를 적극 검토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다"고 말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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