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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이다, 솟구쳐라" 매사냥 비상의 꿈/ 대전시 무형문화재 박용순씨 공개 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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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이다, 솟구쳐라" 매사냥 비상의 꿈/ 대전시 무형문화재 박용순씨 공개 시연

입력
2010.01.2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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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골매가 박용순(51)씨의 왼쪽 팔을 박차 올랐다. 몸길이(체장) 60㎝, 날개를 편 길이가 110㎝나 되는 녀석의 비상(飛上)에 박씨의 팔은 "팍" 소리와 더불어 30㎝나 아래로 꺾였다. 인간의 연약한 팔을 발판 삼아 사냥감을 노리는 매는 매섭게 눈발을 뚫었다.

한겨울 황량한 들판에 홀로 남은 박씨의 왼쪽 팔은 상처투성이다. 가죽 버렁이(팔꿈치까지 가린 보호장갑)를 끼었지만 매의 날카로운 발톱은 에누리없이 살을 파고든다. 그는 40년 가까이 온 몸으로 매를 날렸다. 2~3㎝의 크고 작은 생채기는 삶의 훈장인 셈. 응사(鷹士)라는 호처럼 그는 매[鷹]를 기르고 부리는 선비[士]이길 바란다.

매를 날리는 이유는 사냥만이 아니다

23일 오후 2시 대전시 동구 이사동의 '고려응방(鷹坊)'에서 매사냥 공개 시연회가 열렸다. 고려응방은 사라져 가는 매사냥의 전통을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박씨가 만든 모임이다. 응방은 매 사육과 사냥을 담당하던 고려시대 관청이름에서 따왔다.

먼저 사냥 매의 면면이 소개됐다. 엇비슷한 녀석들이 수진이와 보라매 송골매 황조롱이 등 4종으로 나뉘었다. 박씨는 "매는 참매(수리과)와 매로 구분된다"고 했다. 참매 중 나서 길들인 게 1년 정도면 보라매, 2년 이상이면 '손에 익다'는 뜻의 수진(手陳)이고, 매 중 빛깔이 희거나 푸르면 송골매, 노란 색이면 황조롱이라는 것이다.

오후 4시 옆 들판에서 매를 이용한 꿩 사냥 시범이 시작됐다. 박씨의 팔에 앉은 수진이 풍(風)이 마치 카메라 렌즈를 조절하듯 노란 동공의 검은 눈동자를 연신 키웠다 줄였다를 반복했다.

약 50m 앞쪽에서 한국전통매사랑보존회 회원이 하늘로 날린 꿩이 주위를 살피던 녀석의 시야에 들어왔다. 꿩은 날자마자 방향을 틀어 산으로 달아났다.

풍이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치더니 오른쪽다리 발톱 4개로 꿩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순간 "퍽"하는 굉음이 들판을 압도했다. 꿩을 그대로 땅에 메다꽂은 풍은 날카로운 부리로 꿩의 목덜미를 깊게 물어뜯었다. 용맹함 그 자체였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볼거리 선사를 위한 자리만은 아닐 터. 조삼래 공주대 교수는 "(매사냥은) 고조선시절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에 흐르는 전통문화"라며 "백제의 주군이라는 사람이 일본에 매사냥을 전파(기원전 355년)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매사냥 전통은 현재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관련 인간무형문화재도 2명뿐이다. 이중 박씨는 2000년에 대전시무형문화재(매사냥 기능보유) 8호로 지정됐다. 그가 이날 매를 날린 건 단순히 시선을 끌기 위한 게 아니다. 전통문화 계승과, 나아가 2010년 유네스코세계인류무형유산 등재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사냥보다 힘든 건 까다로운 규제

한바탕 잔치가 끝나자 박씨는 헛헛함을 드러냈다. "전통 운운하면 뭐합니까, 매를 기르는 것 자체가 불법인 걸요." 그의 설명은 이랬다.

산업화와 무분별한 산림개발 등으로 매가 멸종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1983년 매 소유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매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다만 매사냥을 원하는 사람이 문화재청에 신청을 하면 문화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매를 잡아 관리하는 자격(현상변경)을 부여했다. 심의가 까다로워 웬만해선 자격을 얻을 수 없다.

박씨는 "매 보호에는 동의하지만 최소한 매사냥 교육을 몇 년 이상 받은 사람에 한해서는 매 사육을 허용해야 전통도 계승하고 대중화도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무형문화재인 그도 매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관리자'로만 등록돼 있다.

매사냥에 대한 집착은 그의 삶과 무관치 않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매를 접했다"는 그는 부친에 이어 2대째 매사냥을 하고 있다. 시련의 연속이었다.

"돈이 없어 겨우 살림집을 구해도 매가 있는 걸 알고 쫓겨나기 일쑤"였고,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 아내가 일을 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처지"라고 했다. 이날 그의 아내는 시연회를 찾은 손님들에게 부지런히 떡을 나르고 있었다.

그의 벌이는 매달 받는 무형문화재 지원금 70만원과 교육생들이 형편 따라 전해주는 쌈짓돈이 전부. 매 6마리에게 매달 먹이는 고기 값(한달 90만원)도 버겁다고 했다. 그가 관리하는 매는 모두 야생에서 그물로 포획한 것이다.

알아주는 이는 없고, 걸리는 건 많은 매사냥에 평생을 바친 까닭은 따로 있다. 그는 야생에서 매를 데려올 때를 "하늘로부터 매를 받는다"고 표현한다. 산신이 인연을 닿게 해주지 않으면 절대 매와 교분을 나눌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40년간 매를 날리게 해줬다.

그는 꿈이 크다. 매사냥 전통 보존을 넘어 매사냥이 사람들의 사랑을 두루 받길 바란다. 그래서 어려운 처지에 제자 3資?뽑아 몇 년째 교육을 시키고 있다. 내년 이맘때쯤엔 자신의 매들이 보다 넓은 창공을 누비길 소망한다.

"작년 9월에 신청한 매사냥 문화의 유네스코세계인류무형유산 등록 여부가 올해 11월이면 결정되거든요.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면 제도적 여건도 나아질 것이고, 그리 되면 매사냥을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체험장을 만들고 싶어요."

이날 발군의 사냥실력을 선보인 풍이 박씨의 얘기를 진득하게 듣고 있었다. 박씨는 2년 전 충남 금산에서 데려온 녀석을 내년쯤이면 자연에 놓아 줄 것이다. "그게 인간과 자연의 순리니까요." 박씨는 풍의 깃털을 쓰다듬었다.

대전=김현우 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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