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볼커(82) 미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의장은 그간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경제 정책의 주요 흐름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일 오바마 대통령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 등을 골자로 하는 강력한 은행 규제안을 발표하면서 그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기자회견 내내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오른쪽 뒤에 바짝 붙어서 있어 이른바 '볼커 규제(Volcker Rule)'로 불리는 정책을 주도할 것임을 시사했다.
볼커 의장은 1979년부터 87년까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을 역임할 당시에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때문에 상업, 투자은행의 분리를 명시한 '글라스 스티걸 법안'의 폐지를 주장하던 은행의 요구는 후임인 앨런 그린스펀 의장의 취임 후에야 수용됐을 정도다. 이런 소신 때문에 볼커는 오바마 정부 하에서도 가이트너 장관이 주도해 온 온건한 금융개혁을 끊임 없이 비판하며 비대해진 금융 조직에 대한 고강도 개혁을 촉구해 왔다.
규제론자인 그의 부활과 동시에 가이트너 장관과 로런스 서머스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 백악관 내 친월가 인맥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3월 AIG 보너스 지급 파문으로 가이트너가 사퇴압력을 받을 때도 "사표를 낸다 해도 수리하지 않겠다"며 가이트너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왔다. 그런 오바마가 가이트너 대신 볼커식 은행 개혁에 눈을 돌린 데는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선거에서의 민주당 패배가 주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1일"월가에 가혹한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이 11월 중간선거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이날 백악관 관료들을 인용해 "지난달 가이트너가 세금 부과를 통한 은행권 규제를 제안한 직후, 백악관에서는 좀 더 큰 정치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볼커식 규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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