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트에 지적인 까만 테 안경, 풍채 좋은 수려한 외모와 진지함이 배어 나오는 말투.
슬림한 수트에 마른 체형, 맵시 있는 수염과 헤어스타일에 자신감이 엿보이는 억양.
스타일이 전혀 다른 이 두 남자, 같은 일을 한다. 몰트위스키 앰배서더(홍보대사). 직업 한번 독특하다. 국내에 공식적으로 앰배서더를 둔 몰트위스키 브랜드는 '맥캘란'과 '싱글톤' '글렌피딕' 3가지다.
맥캘란 앰배서더 이진오(35)씨와 싱글톤 앰배서더 장동은(36)씨를 12일 서울 청담동 디아지오라운지에서 만났다. 사실상 경쟁관계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마주한 셈. 예상대로 살짝 긴장감이 흘렀다.
마니아 위스키 vs 편안한 위스키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먼저 서로의 브랜드가 국내 위스키 시장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평가해달라고 했다. 두 앰배서더는 생각보다 훨씬 서로의 브랜드에 대해 깊이 알고 있었다.
이진오: "싱글톤은 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2006년부터 수입) 누구나 무난하게 즐길 수 있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죠. 그만큼 몰트위스키의 시장성을 높이는데 기여했어요."
장동은: "한국 위스키 시장은 선점 효과가 큰 편이에요. 초기(1991년부터 수입)에 맥캘란이 마니아 층을 만들며 자리를 잘 잡은 덕분에 몰트위스키가 소비자에게 부각될 수 있었죠."
'윈저' '조니워커' '발렌타인' 같은 이름있는 위스키는 대부분 블렌디드 위스키다. 100% 보리만 증류해 만든 몰트위스키와 옥수수 호밀 등 다양한 곡물을 함께 증류한 그레인위스키를 섞어 제조한 것이다. 요즘은 블렌디드보다 몰트위스키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추세. 아무래도 위스키 고유의 맛과 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내 몰트위스키 판매량은 2008년에 비해 17.5% 늘었다. 일반 위스키 판매량이 약 10%나 떨어진 상황에서 놀라운 성장 속도다.
장: "최근 사람들이 와인을 많이 찾는 현상과 비슷한 이치에요. 다양성이 중요해진 거죠. 와인과 위스키 모두 종류가 굉장히 많잖아요. 그만큼 자신과 맞는 스타일을 자유롭게 찾을 수 있죠."
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가면 소비가 느는 품목이 몇 가지 있어요. 재즈와 샴페인이 대표적이죠. 이제 몰트위스키도 포함될 수 있을 겁니다."
경험과 인맥 vs 교육과 열정
국내에서 위스키는 대부분 맥주와 소주를 양껏 마신 사람들이 마지막 코스로 찾는다. 맥주에 섞어 '폭탄주'로 마시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에 대해 두 앰배서더의 견해는 사뭇 달랐다.
이: "한국인은 술을 식 문화라기보다 여흥을 즐기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경향이 커요. 이 자체가 술을 대하는 우리 방식 아닐까요. 굳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진 않습니다."
장: "많이 마셔도 위스키의 진짜 맛을 아는 이가 별로 없어요. 술에 대한 교양이나 상식을 좀 더 갖추면 과소비하지 않고 술 자체를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술을 더 '맛있게' 마시면 좋겠다는 데는 둘 다 동의했다. 몰트위스키의 맛과 향을 잘 느낄 수 있는 비법을 물었더니 약속이나 한 듯 함께 잔과 물, 얼음을 꼽았다.
이: "양주를 얼음에 희석해서 많이들 마시는데, 온도가 낮아지면서 향이 가라앉는 단점이 있어요. 도수가 부담스럽다면 차라리 상온의 물을 섞는 편이 좋죠."
장: "물과 몰트위스키 비율이 1대 1 정도가 적당해요. 잔 모양도 중요하죠. 아래는 넓고 위는 좁아지는 잔이 향이 올라오면서 모아지기 때문에 고유의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어요."
쉴 틈 없이 위스키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앰배서더는 마치 팽팽한 경합을 벌이는 듯했다. 사실 위스키 앰배서더 하면 아직 낯설다. 외국에선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은퇴자를 주류회사가 앰배서더로 재고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은 바텐더를 비롯한 주류 판매자들에게 브랜드에 대한 배경지식과 다양한 서빙기술을 알리는 전문 홍보맨 역할을 한다.
장: "12년 동안 호텔 바에서 일하다 최근 디아지오코리아에 입사했어요. 단순히 술을 판매하는데 그치지 않고 술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일조하고 싶어요."
이: "건설회사에 다니다 술에 관심이 많아 맥시엄코리아에 지원했고, 외국에서 교육을 받고 왔죠."
■ 위스키마다 음식 궁합 달라
식사할 때 좋은 술 하면 보통 와인을 떠올린다.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최강자 자리를 놓고 요즘 몰트위스키가 와인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블렌디드 위스키에 비해 맛과 향에서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궁합이 맞는 음식을 찾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
이진오 앰배서더는 과일 향이 뚜렷한 맥캘란 12년산은 레몬 드레싱을 얹은 샐러드에 마시면 잘 어울린다고 추천했? 가볍고 부드러운 맥캘란 15년산은 죽과 함께, 스파이시한 맛이 독특한 18년산은 스테이크와 함께 먹으면 고기의 잡냄새를 없애준다.
향이 진하면서도 맛은 부드러운 싱글톤 18년산은 식후 과일과 궁합이 맞다고 장동은 앰배서더는 조언했다. 또 남성적인 향의 아일라산 위스키는 숯불에 구운 고기와 함께 마시면 좋다. '위스키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아일라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 있는 섬이다.
맥캘란 싱글톤과 함께 국내 몰트위스키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글렌리벳도 제품마다 어울리는 음식을 고객에게 추천했다. 들꽃 향기와 열대과일 맛이 어우러진 글렌리벳 12년산은 생선회나 전복 같은 신선한 요리와 잘 맞는다.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감귤 향이 인상적인 15년산은 시금치나 들깨가루 같은 식물성 재료로 만든 요리와 함께 마시면 긴 여운을 남긴다. 잘 익은 서양배의 향이 매혹적인 18년산은 도라지나 우엉 더덕 같은 뿌리류 음식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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